구원에 이르는 길

무슨 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었느냐?

거친반석 2014. 1. 5. 13:22

본문: 로마서5:12-21

제목: 무슨 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었느냐?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로 말미암아 율법을 육체에 주셨고,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마음속에 주셨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온몸으로 지키며 살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했고, 율법을 마음속으로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약2:1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키지도 못할 그 엄한 율법을 인간들에게 주셨을까? 그 이유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왜 죄 아래 가두어 두려는 것일까? 그것은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두 백성 모두에게 각각 공평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다.

 

다음성경 구절을 보면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율법 아래 가두어 두려했던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위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에 3:22-24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사도 바울이 자기가 직접 체험한 것들을 글로 기록한 말씀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위 성경구절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갈라디아 말씀은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현제는 모두 율법 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3:22)”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본문 말씀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다 사해졌다고 믿는 것이다.”

 

율법 아래 살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들을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처럼 이미 율법아래 살고 있던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사도 바울이 말한 말씀들을 모두 그대로 적용시켜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어떠한 율법도 주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방인들 스스로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말씀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 하였느니라(롬5:13)” 바울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을 받지 않았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율법을 받고 보니 비로소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한말을 직역하면,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로 살 때도 이미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더러운 죄악이 가득차 있었으나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것을 죄로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보니 비로소 자신의 마음이 부패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패한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죄악이 올라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깨닫게 된 죄악이다. 기독교인들도 결국 성령을 받고나서야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에게는 주신 율법이다.

 

기독교인들이 속사람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든 죄를 제대로 깨닫고 난 뒤에 예수를 믿어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없이, 다시 말해서 속사람의 죄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 이름을 불렀다면 이는 육체에 속한 겉 사람의 죄만 해결 받는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겉 사람의 죄만 해결 받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속사람의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영적인 백성이 겉 사람의 죄만 해결 받았다면 이는 아직도 법(죄)아래 살고 있는 백성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속사람의 죄를 해결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 때문에 단 하루도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있었더라면 그들이 적어도 예수를 배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세리와 창기 그리고 문둥병자와 소경들은 예수를 찾아가서 죄 문제를 해결 받았다. 세리와 창기들은 율법에서 하지 말라한 짓을 한 죄인들이다. 그리고 문둥병자와 소경들은 모두가 율법을 어겨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당시 어느 누구도 그들을 더러운 죄인이라며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죄인을 구원하러 온 예수님만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죄인들과는 반대로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있던 자들은,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이는 마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로는 인간의 죄가 절대 도말되지 않는다.

 

오늘날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 또한 온전한 것(아들)이 올 때까지 법에 따라 드려지는 하나의 모형에 불과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펼치는 여러 가지 모든 사역도 그리스도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것들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결국 유대인들처럼 아들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9-10)”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령의 법에 따라 드렸던 온갖 여러 가지 예배와 성령의 은사 또한 하나님 아들이 이방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법에 따라 드리던 예배와 성령의 은사들도 모두 폐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어진 성령의 은사와 예배로는 결코 기독교인들이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서는 분명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온전한 것(아들)이 오시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은 쓸모가 없어졌다. 예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성전을 허물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유대 관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 자빠졌지만, 하나님의 목적이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아들을 믿고 죄를 사함 받아 영생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배당 건물도 성령의 법 아래서는 분명히 기독교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온전한 것(아들)이 오시고 난 뒤에는 예배당 건물 또한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열심히 전파해주었던 기독교인의 사역도 온전한 것(아들)이 오시게 되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복음전파로 인해서 현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20억 명에 이른다. 이는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라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슥13:8-9)” 스가랴가 예언한대로, 이제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것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위해서는 반드시 아들로 말미암아 속사람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다음 말씀을 상기해보자!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2:11-13” 여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란?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청함을 받은 자들이란? 하나님 백성들을 일컫는 말로써, 오늘날 법아래 살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택함을 입은 자란?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다. 결국 오늘날에도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백성들은 많이 있으나, 아들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들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마22:14절 말씀을 보며,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청함을 받은 자에 속할 것입니까? 아니면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택함을 입은 자에 속하실 겁니까? 선택은 오로지 여러분들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