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머리로 믿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

거친반석 2014. 1. 5. 13:57

본문: 마태복음12:1-8

제목: 머리로 믿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

 

우리가 예수를 머리로 믿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에는 많이 차이가 있다. 얼핏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실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머리로 믿는 것은 생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생각으로 믿는 사람은 그저 입으로 믿는다고 말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난다.

 

말로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표현했다고 믿기 때문에 별다른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로 믿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 앞서는 사람들이다. 항상 자신의 생각이 앞서다보니까 주께서 하시는 말씀도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 유산시켜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재산을 다 바치라고 말씀하셨다고 치자, 그때 하나님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재산을 다 바칠 수 없다. 머리로 믿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 앞서다보니, 마귀는 그 틈을 이용하여 그 사람 생각에다 “네 재산을 다 바치고 나면 너는 뭘 먹고 살거냐?”고 속삭이면, 생각이 앞서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대부분 마귀의 꾐에 넘어가고 만다. 이런 자는 평생 사단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

 

오늘날 예수를 입으로는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하지만 자신이 내 뱉은 말조차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자들도 실상 말만 하지,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것이다.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23:4)”

 

그러나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머리로 믿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믿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사람은, 주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 때 그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 받기 때문에,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그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듣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코 이삭을 바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비록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드렸던 제사도 마찬가지다. 아벨은 양이 새끼를 배는 순간부터 하나님 것을 구별하여 정성스럽게 예물을 준비하였다. 그런 아벨의 마음을 알아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더불어 그 예물도 열납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처음부터 하나님 것을 구별하지도 않았고 예물 또한 마음으로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과 더불어 가인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덮어둔 체, 무조건 아벨은 예수를 상징하는 양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이고, 가인은 곡식을 드렸기 때문에 예물을 열납하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머리로 믿는 자들은 무조건 예수 이름만 갖다 붙이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열납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12:7)”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나 예배를 원치 않는다. 구약의 제사나 오늘날 예배는 오직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드리는 모형에 불과하다.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8:7)” 첫 언약이 율법이었다면 둘째 것은 율법을 완성시키는 복음이다.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차 오실 아들을 잘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모형으로 주신 것들에 불과하다. 그런데 믿는 백성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전에 나가 제사나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의 죄가 도말되어 구원에 이르는 줄 믿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와 양을 잡아 드렸던 제사도 아니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도 아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 어떤 것을 드려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들이 드리는 제사나 예배가 아니라 인간의 진실한 마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마음은 모두 부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이대로는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음도 없이 모두가 입만 살아서 하나님과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법을 어기면 어길수록 기독교인들의 마음은 더욱더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황패하여 지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고 점점 짐승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자 우리네 가정은 급속도록 파괴되고 있다. 파괴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범죄의 온상이 된다. 요즘은 생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모두가 잔머리들만 굴리고 있다. 이런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힘들게 노동해서 댓가를 얻기 보다는 모두가 한탕주의를 노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묻지 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앞으로 이런 범죄는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정부에서 해결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정신과 의사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혹시 종교단체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현제 1200만이나 되는 기독교인들이 한국 땅에 살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나서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모두가 예수가 그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살아갈 자는 아무도 없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자신이 소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세상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인간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 한분뿐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말씀)이 되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가 오셔야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몰아내고, 산영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오셔서 인간들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실 수가 있다. 이를 두고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던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고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다면,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은 영적인 백성들을 죄짓게 하는 죽은 영을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방인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오시는 분을 하나님 아들로 믿어야 비로소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지금까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아들을 더 이상 믿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분들은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은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입으로는 하나님 예수님을 찾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세상적인 탐욕과 욕구를 제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은 영이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적인 것들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일부러 혹은 억지로 세상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 것을 탐하는 자신이란 존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 것을 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사는 사람은, 아무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라도 처음 얼마동안은 세상 것을 탐하지 않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다시 세상 것을 탐하게 된다. 이는 바로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의 영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 법을 주러 오셨음을 알 수 있다. 율법아래 사는 자들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듯이, 성령의 법아래 사는 자들 또한 영적인 법(성령)의 완성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