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주일 낮 설교
본문: 사무엘상16:1-13
제목: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두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말하고 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해서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을까? 다윗이 잘나서 그랬을까? 똑똑해서 그랬을까?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그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악이 관영하지 않던 때라 인간들을 구별하는데 혈통을 따라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하였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를 ‘의인’으로, 가인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를 ‘악인’으로 구별하였다. 여기서 ‘의인이란’ 아벨과 같이 마음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자를 의인이라 불렀고, ‘악인이라’ 함은 가인과 같이 마음중심이 세상을 향해 있는 자를 악인이라 불렀다.
당시 혈통을 따라 의인들은 천수를 누리는데 비해서 악인들은 죄악으로 인해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 후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들이 급속하게 타락을 하게 되는데, 의인과 악인들로 구별되어 살던 사람들이 서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타락은 빠르게 진행 되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1,2)”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고 홍수로 그들을 심판하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의인과 악인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자들만 의인으로 구별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선택을 받은 자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 하나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하나님의 선택은 계속 되었다. 똑같은 아브라함의 자식이지만 이스마엘은 버림을 받고 이삭이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에서와 야곱도 똑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에서는 버림 받고 야곱이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만을 의인으로 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고정관념 속에서 약2천년을 살아왔다. 이런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백성들 앞에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제부터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자가 의인이 될 수 있다”고 하자, 그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나서 예수를 이단 괴수라며 온갖 핍박을 가하다가 끝내는 로마군의 손에 넘겨 죽게 만들었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시고 난 뒤부터는 의인과 악인의 구별방법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수가 오시고 난 뒤부터는 오직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만이 의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요8:33)” 제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어둠속에 사는 소경에 불과하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아브라함 혈통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직역하면 바울 자신도 율법으로 하면 ‘의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알고 나서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빌3:9)” 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조상의 혈통을 따라 의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고보니 비로소 죄 사함을 받아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어떤 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을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 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을까?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 헌금을 많이 하거나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데려다 돌보면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아주실까? 혹시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들을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한 자로 여겨주실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를 보는 분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믿고 성령을 받은 자를 구원 받은 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므로,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서는 결코 속사람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아직 기독교인들은 겉 사람의 죄만 사함 받았기 때문에 속사람의 죄를 사함받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온전한 구원에 이른 자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장차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이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 아래 살던 백성들의 죄(율법)를 담당해 주기위해 오신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자꾸만 이를 혼동하여 예수를 믿으면 부패한 자신들 마음속의 죄(속사람)까지 모두 사함 받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믿게 되면 육체로 지은 겉 사람의 죄만 사함 받게 된다. 영적인 백성이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지 않고 겉 사람의 죄만 사함 받게 되면 그것을 두고 온전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만약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마지막 날에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적인 백성들 또한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다. 고로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체로 저지른 자범죄(율법)을 담당해주러 오신 분이시다. 혹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저지른 속사람의 죄까지 담당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백성들이 마음속으로 저지른 속사람의 죄는 오로지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그리스도께서 담당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으로 저지른 속사람의 자범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혹시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모든 죄를 해결 받아 구원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를 믿어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과정과 이방인들의 구원 과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육체에 주셨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을 마음속에 주셨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을 받게 되고, 후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그것이 곧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인 이제 막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첫 삶을 시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듯이, 성령의 법 또한 온전히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현재 모두가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는 날마다 온갖 죄악들이 쌓여가고 있다. 죽은 영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더욱더 강퍅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타락으로 가고 있다. 이는 바로 성령의 법을 거역하고 살기 때문이다.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방인들 앞에 보내 주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고 기독교인 모두가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직역하면, 믿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님 자녀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당신의 아들을 찾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를 빗대어 하신 말씀이 바로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2:11-13)” 여기서 ‘예복’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말로서, 결국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게 되면 바깥 어두움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