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義)와 하나님의 의(義)
본문: 누가복음18:9-14
제목: 인간의 의(義)와 하나님의 의(義)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에 따라 정직하고 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6)” 율법을 받은 하나님 백성은 율법을 따라 살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육체를 입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따라 살기란 불가능하다. 법은 열 번 잘하다가 단 한번만 잘못해도 모든 법을 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의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죄인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백성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인간의 의(義)가 싹트기 시작하여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義)란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우월하다고 하는 것이다. 율법 안에 들어있는 모든 규례들을 적용하여 그것으로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안식일 규례를 적용하여 안식일을 잘 지킨 자는 의인이고, 잘 못 지킨 자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도, 어떤 자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데 비해서 어떤 자는 이것저것 다 떼고 십일조를 드린다. 여기서도 의인과 죄인으로 갈리게 된다. 하물며 금식하는 것에서도 자기 의를 쌓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속에는 인간이 지켜야 할 규례들이 무수히 많다. 그 많은 율법의 규례들을 적용하여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도 하고, 죄인을 만들기도 한다. 똑같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면서 어느 누가 죄인이 되고 싶겠는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의인은 천국에 갈 것으로 믿었고, 죄인은 지옥 불에 떨어질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두 의인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율법의 의(義)로 말미암아 탄생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사들이다. 그들은 당시 대부분 종교지도자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성도들 보다는 지도자들이 더 의롭게 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은 성경을 가까이 하고 또한 백성들을 가르치다보니 경견생활 또한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율법을 거역하게 되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리 경건생활을 열심이 하고, 금식과 금욕생활을 많이 했다하더라도 그런 열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의인이 될 수 없다. 의인이란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들이다. 그들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하면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믿었지만, 짐승의 피가 인간의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의인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아들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자신을 의인이라고 믿고 있던 자들은 아들을 믿지 않아 모두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이런 일은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기 전 불신자로 살 때는 성령을 받지 않았으므로, 성령의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율법(마음속에 주신 법)을 따라 살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의 법을 온전히 따라 살 수가 없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기독교인들의 문제도 바로 여기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은 의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죄인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모두 구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이때부터 기독교인들의 구원관도 잘못되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령의 법 안에 들어있는 모든 규례들을 적용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주일성수 하나만 보더라도 주일을 잘 지켰냐! 못 지켰냐! 로 구원 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 한자로 구분한다. 십일조 또한 어떤 자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데 비해 어떤 자는 이것저것 생활비 다 떼고 십일조를 드린다. 여기서도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 한자로 구분된다. 하물며 금식하며 기도 많이 하는 것에서도 자기 의를 쌓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들 모두가 실상은 자기 의를 쌓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나,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에게 밥 퍼주는 일을 하는 것도 실상은 모두 자기 의를 쌓기 위해 하는 일이다. “나는 이런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수고를 알아봐 주시고 내가 천국에 이를 때 상급을 많이 주실 거야!”물으면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속마음은 모두가 이걸 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을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법속에는 인간이 마음속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법들을 종교지도자들은 인간의 잣대로 들이대서 누구는 무엇을 했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하고 또 누구는 무엇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 받지 못 한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것이다. 똑같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면서 모두가 천국가고 싶어 하지 어느 누가 지옥가고 싶겠는가?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다. 그 유익이란 바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 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성도들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기독교인들도 바로 이때부터 잘못된 구원관으로 인해서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리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고, 경건생활과 더불어 금식기도와 금욕생활을 많이 했다하더라도 그런 열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기독교인들 또한 구원에 이르려면 마음속에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모두 죄인들이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마음이 부패한 죄인들이다.
기독교인들은 성전에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수많은 예배를 드렸지만, 현제까지 어느 누구하나 제대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졌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그런데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세상 것에 대한 탐욕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려면 영적인 백성들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허나 아직은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기독교인들 중에서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자가 한 사람도 없다. 이를 부인하며 자기를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현제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금방 알 수 있다.
현제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것과 일상생활 속에서 육신으로 짓는 죄밖에는 사함 받지 못한다. 영적인 백성이 육신으로 짓는 죄를 사함 받는 것으로는 결코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영적인 백성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마음속으로 지은 영적인 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마음속의 영적인 죄를 사함 받으려면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어야 한다.
혹자가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니까 어떤 사람은 그런 죄는 우리가 죽었을 때 예수께서 다 사해주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의 육체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죄를 전가할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죄가 그대로 남게 되어 부활할 때 죄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죄가 사해진다면 지옥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런 말은 마귀가 인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꾸며낸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이런 말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죄든 자범죄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모두 사함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쌓아 만든 의(義)는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여 만든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이 쌓아 만든 의로 말미암아 교만에 빠져서 마귀에게 쓰임 받다가 멸망으로 가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義)는 인간들에게 먼저 법을 주시고 죄 아래 가둔 다음, 죄인들 앞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 자녀삼아 주시고 그런 다음 아들의 은혜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義)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현제 누구 의(義)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 자신을 확증하여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