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거친반석 2014. 1. 5. 14:08

본문: 마태복음22:1-14

제목: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결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자신을 키워준 부모 곁을 떠나 둘이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는 아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결혼식의 풍습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에 있어서는 모두 똑같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도 인간들의 이런 결혼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록 자신은 이 땅에서 34년이란 짧은 삶을 살다 가셨지만, 장차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영적인 결혼을 혼인잔치에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들의 구원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먼저 이스라엘의 구원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탈출시켜 주셨다. 이는 한 마디로 애굽의 발아래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죽을 날만 바라보고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희망의 나라로 이끌어 주신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탈출한 그들에게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주시고 모두 그 아래 살게 하였다. 그들에게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주신 것은, 세상 법은 고무줄과 같아서 인간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둘 수가 없다. 따라서 믿는 백성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어 두지 못하면 장차 하나님께서 보낼 아들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믿는 백성들에게 엄한 율법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기한이 이르자, 당신의 아들을 죄(율법)아래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 주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아들과 혼인시켜 주시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동안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던 자들을 먼저 혼인잔치에 초청했지만, 그들이 오기를 싫어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살찐 짐승을 잡아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으니 모두를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으나, 저희가 거들떠보지도 않을뿐더러 그들 중에 어떤 자는 일하러 밭으로 가고, 또 다른 자는 돈 벌러 장사하러 떠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남아있던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화가 난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모두 불사르게 하였다.

 

그들은 왜 그토록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인간이 자기 의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하나님의 “(義)”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義)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서 오직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것으로 곧장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루 미루어 보건데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인간이 자기 의를 세우려 할 때,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원수 짓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방인들의 구원과정을 살펴보자!

이방인들 또한 아브라함의 시작과 더불어 약4300년 동안을 사단(세상)의 발아래서 살다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사단의 발아래서 겨우 탈출하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먹고 마시며 죽을 날만 바라보고 살아가던 이방인들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희망의 나라로 이끌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발아래서 탈출한 기독교인들에게도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영적인 법”(성령)을 주시고 모두 그 아래 살게 하였다. 그들에게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을 주신 것은, 세상 법은 고무줄처럼 인간의 생각에 따라 죄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기 때문에 인간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둘 수가 없다. 따라서 믿는 백성들 모두를 죄 아래 가두지 못하면 장차 하나님께서 보낼 아들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엄한 성령의 법을 육체가 아닌 마음속에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기한(4300년)이 이르자, 이번에도 당신의 아들을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영적인 백성들 앞에 보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번에도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고 나오기만 하면 모두 당신의 아들과 혼인시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개, 돼지처럼 날마다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살다보니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들 마음이 온통 죄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법(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두 혼인잔치에 초청해 주셨다. 유대인과 달리 이번에는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많은 사람들이 혼인잔치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혼인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임금이 들어와서 그들을 하나하나 손을 보기 시작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복을 입고 오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 묻기를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왔느냐”고 묻자 그들이 말을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임금이 말하는 “예복”이란 바로 아들로부터 (印)침을 받은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계시록에도 보면 하나님의 (印)맞지 아니한 자들만 해하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영적인 백성이라도 아들로부터 인(印)침을 받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이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고 (印)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 가져야 할 예복이다. 기독교인들이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여 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지 안했다는 증거다. 임금은 그런 자들을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안했으므로 지옥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모두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믿고 받은 성령을 모두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여 자신들 역시 모두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다. 이는 곧 자신들도 모두 아들과 혼인할 예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성령과 그리스도 영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만약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똑같은 한분으로 보게 되면 기독교인들에게 절대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신앙으로 사단만 좋게 만든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요(마10:20참조) 그리스도 영은 아들의 영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받은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한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살자가 없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법을 주신 것은 영적인 백성들을 모두 죄(율법)아래 가두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죄 아래 갇혀 있는 영적인 백성들을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서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이다. 그래서 자꾸만 기독교인들 앞에도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이 오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을 때, 그들이 마음속으로 지은 영적인 죄가 사해진다. 영적인 죄를 사함 받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들과 결혼할 “예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이방인들 또한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지 않을 것을 미리 예언하고 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여기서 “청함”을 받았다는 말은 개, 돼지처럼 날마다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어, 비로소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과 결혼할 수 있는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신랑과 혼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신랑에게 달려있다. 신랑은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구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결코 배경 좋은 집안 출신(욕심)을 신부로 맞이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세상에서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학벌(오만)좋은 자를 신부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랑은 자신이 천하고 낮은 곳에서 왔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서 높은 감투(교만)를 쓰고 있다고 해서 그런 자를 신부로 간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조상 대대(전통)로 오랫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고 해서 그런 자를 신부로 간택하지 않을 것이다. 신랑이 원하는 자는 세리와 창기처럼 오직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을 신부로 “선택”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 깊이 새기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깊이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자는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게 될 것이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결국 아들의 음성을 듣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 귀 있는 자는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