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더라!

거친반석 2014. 1. 5. 14:19

본문: 요한복음3:16-21

제목: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 앞에 참 빛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사람들이 빛을 좋아하기 보다는 어두움을 더 사랑하더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그들에게 죄가 없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죄 아래 태어나서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마귀가 인간의 주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 마귀의 꾐에 빠져 고통 받는 것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서 범죄한 마귀를 멸하고, 마귀의 발아래서 신음하며 죽어가던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다. 그 첫 번째 계획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초청을 받아 쓰임 받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하나로 시작한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곳에서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을 불러내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에 후손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라” 약속하고 그들을 애굽으로 보낸 것이다. 드디어 그들의 숫자가 모래알처럼 불어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와 바란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이르자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이다. 율법을 받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세상)법을 따랐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키고 살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더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주신 법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로 말하자면 성령의 법으로 죄를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모두 구원 받았다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었지만, 마귀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교묘히 속이고 도리어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마귀가 기독교 지도자들을 교묘히 속이고,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사람들을 모두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 아래서 약 2천년 동안 살게 하신다음 “기한이 이르자” 하나님께서 그 첫 번째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마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두가 의롭게 되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현상을 두고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이 세상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오지 않더라!(마22:3)”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던 자들은 예수를 믿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을 배척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약600만명이 가스실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어둠속에 사는 인간들에게 하늘의 참 빛을 보내주셨지만, 인간들이 어두움을 더 사랑한 나머지 빛으로 오신 아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아들을 배척하게 되면, 그때는 가스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어둠속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 두 번째 계획을 세우신다. 그동안 세상(사단)법에 얽매여 살던 이방인들을 먼저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원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방인으로 살던 자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살던 자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청함을 받았다 해도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반드시 또 한번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고 택함을 입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아들을 믿고 택함을 입어야 하고, 영적인 백성들은 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고 택함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 이름으로 부르고 기독교인으로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고 말하고 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백성으로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불신자들처럼 세상 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육적인 백성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으로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라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원죄는 사함 받았지만, 모두들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고 말았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극심한 타락이다. 기독교인 스스로 지은 죄를 두고 자범죄라 부른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원죄는 사함 받았다 해도, 성령을 거역한 죄 즉, 성령을 훼방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그들의 죄를 더 들어나게 하실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다고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령의 법 또한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들을 더 들어나기 위해서 주신 법이다. 그래야 장차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었을 때,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들고 영적인 하나님 아들 앞으로 모두 달려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성령 훼방 죄를 지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들고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 앞으로 달려 나와서 모두가 아들을 믿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 아들은 기독교인들의 성령 훼방 죄를 사하고, 그들을 천국에 들어갈 자들로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째 목적이 완성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잘도 지적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있다. 구약은 신약을 볼 수 있는 거울이고, 신약성경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비춰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올바른 구원관에 대해서 가르쳐 주가 없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고 했다. 제아무리 큰 능력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 품속에서 나온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면 모두가 소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결국 망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자는 바른 길을 가르쳐주면 돌아설 기회라도 생기지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쳐 주어도 돌아서기는커녕 도리어 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자들을 힐난하고 핍박한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계획으로 어둠속에 사는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참 아들을 보내주셨지만, 결국 기독교인들도 빛으로 오신 아들을 배척하고 어둠속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향해서 예수께서도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0:14,15)”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원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인간의 원죄란?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었던 죄로서 반드시 흠 없는 인간의 피로서만이 해결 받을 수 있다. 구약에서도 성령께서 일을 하셨지만, 그때는 예수가 피를 흘리기 전이라 성령께서 인간의 영속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몸 밖에서 선지자들의 마음을 붙잡아 일하셨던 것이다. 그들을 우리는 종이라 부른다.

 

성령께서 인간의 영속에 최초로 들어가셨던 것은 예수다. 예수는 우리가 아는 대로 죄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 곧바로 그의 영속에 들어가서 죄가 없는 예수 마음을 붙잡아 마음대로 일하실 수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께서 먼저 그들의 자범죄(율법)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들의 영속에 들어가서 마음을 붙잡고 일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이름으로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지만,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이 모두 부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패된 마음으로 인해 모두가 성령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훼방한 죄를 지은 죄인들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

 

기독교인들의 부패된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성령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부패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져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