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거친반석 2014. 1. 5. 14:21

본문: 요한복음14:1-15

제목: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만 잘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

 

아브라함 하나로 시작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율법의 규례에 따라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할례를 받아 하나님 백성으로서 출발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이방인들처럼 따로 전도할 필요가 없다. 어찌 보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가장 먼저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도, 율법의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 이유는, “짐승의 피와 살이 능히 인간의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10: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어리석게도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율법이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가 다음과 같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말았다(마22:2-7)”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마귀의 꾐에 빠져 전혀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율법을 그들이 잘못 적용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혼인잔치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임금이 비록 혼인잔치에 합당치는 아니하나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을 초청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개, 돼지처럼 살아가던 죄인들이라 혼인잔치에 합당한 자들이 아니다. 허나 먼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혼인잔치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방인들이 어부지리로 초청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방인 가운데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초청대상이 되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현재의 기독교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표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께서 흘려준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받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그것이 곧 혼인잔치에 참석할 때 입을 “예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복은 오직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 입는 옷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자범죄까지 사함 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자범죄를 짓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자범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죽으면 마지막 날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유대인들이 육체로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듯이,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으로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부패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을 온전히 따라 살수가 없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다. 허나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일이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야 마지막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부패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유대인들처럼 다음과 같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2:8-13)”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닥칠 마지막 심판의 결과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믿지 않고,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계속해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자신들만큼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구원 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모두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라고, 예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다(참고 마10:20). 예수는 아들의 영, 혹은 그리스도 영이라고 부른다.

 

성령은 예수가 오시기 훨씬 전부터 계셨다. 구약에 보면 성령께서 선지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일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써 예수가 오시기 전에는 인간의 몸 밖에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일하셨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의 영속에 내주하게 된 것이다.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예수가 구약에서도 일하셨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예수가 구약에도 일하셨다면 성경은 완전히 잘못 기록된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의 영속에 최초로 들어가게 된 것은 예수가 처음이다. 모든 인간은 아담이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예수 영속에 내주하여, 죄가 없는 예수 마음을 붙잡고 일하셨던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이 아닌 인간의 영속에 내주하셨다는 의미는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뜻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비로소 마귀의 발아래서 인간의 영이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 마귀의 발아래서 해방을 받았다 해도, 기독교인들이 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영속에 오신 성령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접고 성령의 뜻대로 살 것을 종용하신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처음에는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이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한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히10:28-29)”

 

만약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성령이 아들의 영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성령은 인간의 영에 해당하는 지성소에 계셔야 하고, 아들은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성소에 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그것은 이제 막 영적인 율법을 받고나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출발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예수님 당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똑같이 죄 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죄 아래 갇혀 있는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 앞에도 기독교인들 앞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한다.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이 오셔야 하고, 기독교인들 앞에는 영적인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인간의 영속에 내주하시지만, 그리스도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의 부패한 마음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옛 사람이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옛 사람이 죽는 길은 오직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난 자만이 성령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청함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방에서 초청을 받은 자는 많지만, 그들 중에서 아들을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말이다.

 

이방인들 중에서 혼인잔치에 참석한 자들이 “예복”을 입지 않고 왔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이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성령이 아닌, 그리스도 영이 없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 인간의 마음속에 내주하실 수가 없다. 지성소에 계셔야할 하나님께서 아들이 계셔야 할 성소에 들어오게 되면, 이는 하늘나라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위계질서를 세워놓고 하나님 스스로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혹시 하나님의 위계질서가 무너져서 인간의 마음속에 성령이 내주하시게 된다면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령으로의 거듭남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는 일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세워놓은 불변의 법칙이다. 누구도 이를 거부할 수 없고,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자에게는 구원도 천국도 없다.

 

예수께서는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다시한번 이 말씀을 들려주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이 말씀은 하늘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의 귀에만 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