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거친반석 2014. 1. 5. 14:35

본문: 요한복음5:1-18

제목: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하는 예수를 핍박하는지라,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데, “예수께서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생각 한다”며 더욱더 분통을 터트리며 죽이려 하는 것이다.

 

당시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엄한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보잘 것 없는 예수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자, 마치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분통을 터트리며 그를 죽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던 것은 당시 마귀와 더불어 마귀에게 쓰임 받던 인간들을 심판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끝까지 핍박했던 자들은 결국 예수를 믿지 못하고 패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마태복음 12장에도 보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들어 온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 고쳐주시자, 바리새인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죽이려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우매함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지만, 유대인들이 자신의 우매함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할 때는 “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를 미워하며 죽이려 하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 눈으로 보면, 분명 예수는 좋은 일을 하고 다니시는데, 그를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일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율법에는 안식일에 어떤 노동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쳤으니, 그 일은 노동에 해당되어 당연히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한 사람이 범죄 하게 되면 단체로 하나님한테 벌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무서워서라도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하나님 뜻에 따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으며 또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따라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율법만을 고수해온 유대인들로서는 예수께서 하고 다니는 일이 몹시도 못마땅하게 보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2천년 동안 제사를 드리며,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강청해서 그들 앞에 메시아를 보내주었지만, 정작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매한 인간들은 예수가 하는 일을 잘못 되었다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이다. 이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도 믿지 않던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의 구원과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잘못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값없이 보내주셨다. 구약 때도 성령이 계셨지만, 그때는 예수가 오시기 전이라 사람 몸 밖에서 일하셨지만, 예수가 오셔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 세상 누구에게나 성령이 오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대인과 달리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이 곧 율법 역할을 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믿는 백성들에게 법을 먼저 보내주시고 법아래 살게 하신다음, 하나님 법을 어긴 인간들을 죄 아래 가둔 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 법을 어긴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유대인들에게만 율법과 복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율법과 복음을 주신 것이다. 이런 원리로 말미암아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율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게 하신다음, 마지막에 예수를 보내서 그들을 율법을 어긴 죄에서 구원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게 하신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성령의 법을 어긴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들을 공평하게 대하시는 방법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죄)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방인들 앞에 영적인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을 믿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기독교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형이 아닌, 실체로 오신 예수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이때 영으로 계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직접 나타날 수 없으므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렇게 오시는 분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죄)아래서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린 것은, 사실 자신들을 성령의 법(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강청 드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야곱의 예표로 보내주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지 않으면, 제아무리 큰 교회 사역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많은 일을 했을지라도 결국은 야곱의 형 에서처럼 육신의 사람으로 버림 받게 된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우려되는 일은, 현재 모두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다 보니, 성령의 법을 완성하러 오신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과연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처럼, 하나님 아들을 이단괴수로 보고 배척할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영적인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방인들 앞에도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와서 성령의 법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죄 아래 갇힌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에 대하여 지적하자,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는 이미 예수 믿고 성령까지 받아서 그리스도로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를 더 이상 죄인취급하지 말라며” 아들이 하는 일을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다. 어쩜 그렇게도 유대인들이 걸어갔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단 말인가?

 

그래도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하나님 아들은 어떻게든 성령의 법아래 갇힌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영과 혼과 관절을 쪼개기까지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숨은 죄악들을 낱낱이 지적한다. 그러자 온 교회가 들고일어나서,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이단괴수라며 사람들을 아예 상종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려는 수작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악한 영에게 쓰임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불쌍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핍박과 방해가 너무 심해지자, 영으로 오신 아들이 참다못해서 “예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며,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예수께서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한다. 이는 곧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과 더불어 마귀에게 쓰임 받고 있는 인간들에게 보내는 최후의 통첩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앞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을 쓰고 있는 악한 영들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 죄를 사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데 네가 감히 예수 이름을 팔아서 우리를 죄인 만들려고 그러느냐?”며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끝까지 핍박하는 것이다. 유대인들만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핍박하고 죽으려 했던 것이 아니고, 결국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 아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이라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 이렇게 악한 영에게 쓰임 받고 마는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 앞에 열심히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유대인들이었지만, 결국은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아들을 배척하고 죽이더니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 아들을 이단괴수라며 배척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 아래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불쌍한 모습이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그러했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는데도,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성령의 법으로 구원받았다고 우쭐되자, 마귀는 인간들의 교만을 이용하여 구원받았다고 속여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어떻게든 믿지 못하게 하여 기독교인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받고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은 모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백성의 신분은 아직도 죄를 완전히 벗지 못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대로 죽으면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법아래 살던 사람들 앞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때 백성으로 살던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들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택함”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성경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20억쯤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중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영생에 들어갈 자가 과연 몇이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