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거친반석 2014. 1. 5. 14:37

본문: 마태복음16:13-20

제목: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했던 말씀과 또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데로 메시아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어느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어주지 않았다. 그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로 오셨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어느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2천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놓고도, 왜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죄 아래 사는 하나님 백성의 한계이다. 백성은 아직도 죄를 완전히 벗지 못한 종의 신분이다. 따라서 종으로서는 결코 주인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모세가 인간으로서는 가장 크게 쓰임 받았지만, 하나님 품속에서 나온 예수에 비하면 전혀 보잘 것 없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이 이방인(불신자)들과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불신자(이방인)들이 죽은 신(神)을 믿는데 비하여, 하나님 백성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면, 그것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야 한다. 그런 이유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보내주신 것이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영적인 백성들 앞에는 영적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게 된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삭(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야곱(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영적인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 때부터 계획하신 일이다. 따라서 누구도 변개할 수 없다. 혹시 이런 일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에게는 구원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백성들에게 반드시 법을 먼저 주신다.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주셨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의 법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들에게 법을 주시는 이유는, 믿는 백성들 모두를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들을 법아래 가두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믿는 백성들에게 법을 주시는 이유는, 믿는 백성들을 먼저 법아래 가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크나큰 은혜이다.

 

그러나 정작 법아래 사는 백성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유대인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 나가 하나님 앞에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어 의롭게 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뿐,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했던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 앞에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도 모두 소경에 속한다. 육신적인 소경이 사물을 분간할 수 없듯이, 영적인 소경은 전혀 하나님 뜻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 했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신 율법과 복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영으로 오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독교인들 또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복음의 의미는, 자신들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던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신들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기독교인들에게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자신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 무엇인줄 알고 있다면,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함부로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다보니,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전에 모여 예수 이름으로 예배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가 도말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령의 법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할뿐, 기독교인들의 어느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해결 받은 것이 딱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첫 사람이 아담이 지었던 원죄를 사함 받은 것이다.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동안 아담이 지은 원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직접오시지 못했는데,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가 해결되고 나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직접 인간들 속에 오시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계시면 각 사람 속에 오실 수 없다. 하지만,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각 사람 속에 오실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독교인들 생각 속에 오셔서 하나님 법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마음이 부패하여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 없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자동적으로 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된 것이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성령의 법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영적인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수도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셨을 때는 한분이셨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영적인 분이 되셨다. 예수께서도 영으로 계시기에 이제는 각 사람 마음속에 오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영적인 분이 되어 처음 인간 속에 들어가셨던 것이 바로 사도 바울 속에 빛(영)으로 들어가셨던 일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본인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영으로 들어오시게 된다. 이를 정리하면,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인간의 생각(지성소)속에 오시고, 그리스도는 예수의 영으로서 자범죄를 사하시고 인간의 마음(성소)속에 오신다.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예수를 이름만 부르면 누구든지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범죄는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라서, 자신이 지은 죄를 직접 들고 아들 앞으로 달려 나아가야 한다.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아들 앞으로 달려 나아가야 하고, 기독교인들은 영으로 오신 아들 앞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직접 들고 달려 나가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 받고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며 묻는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세례요한 또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 하나라고 하나이다”하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며 다시 묻는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즉시 대답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血肉)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인간 스스로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아들이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는 네가 스스로 안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 알려주어서 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있을까?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니까 혹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기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다. 간단한 예로,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오시는 것이 도적같이 오시는 것인지 기독교인들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영적으로 오신 주님께서 벌써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을 상대로 시험을 해본결과 도적 같이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음이 드러났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버리고, 자신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도,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자들은 예수 앞에 달려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자들은 예수 앞에 달려 나가서 자범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갔다. 오늘날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자들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오늘날 바울처럼 영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에게는, 당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과 똑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의 뜻은, 죄 아래 살던 옛 사람(시몬)이 예수로 말미암아 새사람(베드로)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반석 즉,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 교회를 세울 것이므로, 음부(마귀 또는 귀신)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하늘의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이는 실로 엄청난 일이다. 하나님 아들만이 가지고 있던 권세를,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당시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 거듭난 자들에게도 이와 똑같은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떤 누구에게도 이런 권세가 주어진 적이 없다. 아무리 큰 교회를 운영하고 있더라도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실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한 죄인들에게는 이런 권세를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이런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이런 권세가 주어지게 되면, 계시록에서 말씀하신대로 주님 앞에 선 일곱 교회와 더불어 십사만 사천 명의 하나님 아들들이 바로 천국 열쇄를 손에 쥐고, 전 세계 도처에서 마지막 대환란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