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본문: 요한복음6:22-40
제목: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인간 또한 흙으로 빗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 동물과 달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교재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말았다. 아담을 범죄케 한자는 하늘에서 내어 쫓긴 마귀다. 마귀는 원래 선하게 지음 받은 천사였으나, 그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그만 이 세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영적인 존재가 피존 된 세상으로 쫓겨났다는 말은, 범죄자를 일단 유치장에 가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 세상은 마귀를 심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감옥이나 다름없다.
마귀는 하늘에서 내어 쫓긴 후 이 세상 임금이 되었다. 아담이 마귀 꾐에 넘어간 후로 모든 인간은 마귀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귀를 멸하고,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낼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기에 앞서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를 세워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고 그 아래서 2천년 동안 살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아래 살게 하신 이유는,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죄 아래 가둔 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마귀를 멸하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아들을 잘 믿도록 하기 위하여 그동안 충분히 예행연습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죄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하나님의 이런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아들이 오시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의롭게 된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달아도 모자랄 판에 의롭게 된 자들이 나타나다보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는 자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2천년 동안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어둠속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약 성경은, 예수가 어떻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나님 아들이 되었는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의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드린 제사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무슨 권세로 귀신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범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하게 되는가?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야 되는가? 마귀는 무엇 때문에 세상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는가? 예수가 어떻게 하여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를 사하게 되는가? 신약 성경은 온통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어느 누구도 이런 내용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사사건건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당시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만 드리면 그것을 최고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목수 아들이 나타나서 율법에 반하는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당시 어느 누가 보더라도 예수는 율법을 모독하는 자로 보였다. 율법을 모독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 눈에는 예수의 행동이 율법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둠속에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어둠속에 살고 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토대로 하여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정작 메시아가 와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전혀 몰랐다. 그들에게도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메시아가 오면 로마의 압제에서 풀려나게 될 줄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가 로마를 이스라엘에서 몰아내기는커녕, 자신들이 보아도 더러운 죄인들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예수에게서 메시아라는 희망을 접게 된다. 그러나 어둠속에 살고 있는 우매한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으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약 성경을 토대로 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또한 예수가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시 가장 더럽다고 하던 세리와 창기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된 반면,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믿지 못하고 구원에서 멀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몸에 병이 들어 사람들과 격리될 만큼 소외된 생활을 하였으나, 그들이 예수를 먼저 믿고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잘못은 잘도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 못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정작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다. 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잘못은 보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으니 기독교인들 역시 어둠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라는 논리를 내세워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같은 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아버지 영이요 그리스도 영은 아들의 영이다(마10:20참조). 하나님 안에서는 이 셋이 한분이지만, 그 하시는 일은 각각 다른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을 때, 지성소와 성소와 마당을 각각 따로 만들었던 것도 모두 인간의 영혼(영, 혼, 육)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또한 각각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정말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면, 그리고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을 거듭나게 하였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지금쯤 모든 죄악이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이 도사리고 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아직도 죄악이 남아있다는 말은 아직 기독교인들이 구원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는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기독교인들을 거듭나게 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깨닫기 위해 법을 주러 오신 분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음은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구원 과정이다. 유대인의 구원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구원과정을 터득해나가야 한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자신이 지은 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되고,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아담이 지은 죄로서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원죄는 반드시 예수 피로만 해결 될 수 있다)를 해결 받게 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든지 예수 이름만 부르게 되면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고, 후에 성령을 받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곧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범죄’도 사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죄’를 사함 받지 못하여 성령도 내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만 따를 뿐이다.(히틀러가 유태인600백만 명을 학살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구원과정을 그대로 자신들에게 적용시키게 되면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의 구원과정과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의 구원과정은 똑같지가 않다. 그 이유는, 유대인의 신앙생활과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육체에 받은 백성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사람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을 토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에 힘을 얻어,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만 받으면 모두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대인들을 보니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율법도 없이 이방인으로 살던 자가 율법아래서 살던 자들과 똑같은 구원과정을 밟을 수는 없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맞은 구원과정이 있고, 이방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맞는 구원과정이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이미 2천년을 살다가 육신을 입고 온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에 들어간 사람들이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성령을 받고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아온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년을 살아온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았다는 말은, 이제 기독교인들도 모두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기독교인들을 모두 성령의 법아래 가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인 모두를 죄 아래 가두어야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도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죄에서 구원해줄 것이다. 이제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원죄’는 사함 받았기 때문에, 이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기만 하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고 모두가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오시기도 전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아들을 믿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처럼, 기독교인 중에서도 영적인 아들이 오시기도 전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은,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지 못하게 되여 결국 쭉정이로 버림 받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메시아가 와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께서 도적같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지에 대해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사람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기가 쉽지 않다. 그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철저히 죄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그의 사역을 방해를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를 이단시 하여 침을 뱉고 돌팔매를 던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주님을 두 번 죽이는 결과는 낳게 된다. 성경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가라사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 하신다. 이 말씀의 뜻은, 그동안 성전에서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 인격적으로 오신 주님께서도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온갖 예배를 다 드리고, 또한 온갖 예물 드리고 죽도록 충성을 다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하늘에서 범죄 한 마귀를 가두기 위한 장소다. 그리고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만든 것은 마귀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인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그 마귀의 죄를 드러내는데 쓰임 받은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 결과 마귀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죽이고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들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인간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보기 때문에 교만이 자신의 눈을 가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을 몰아내는 일이다. ‘죽은 영’은 인간의 본질로서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었다. 마귀가 인간의 몸 밖에서 죄를 짓게 하는 자라면,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 탐욕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죽은 영’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죽은 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던 이유가 바로 ‘죽은 영’의 방해 때문이었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분은 오직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 스스로는 절대 ‘죽은 영’을 몰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라도 ‘죽은 영’을 몰아낼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죽은 영’을 몰아낼 권세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만 주신 권세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죽은 영’을 몰아내고 인간의 주인으로 오셔야만 비로소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된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지금까지 ‘죽은 영’의 방해로 성령을 거역하고 모두가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생겼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결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를 아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도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아들을 믿고 ‘자범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신 말씀은,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기독교인으로 부름을 많은 자는 많되 정작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고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 아들은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다. 혹시 지금까지 이단에 속한 자들이라도 혹은 믿지 않던 불신자라도 또는 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와 더불어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영적인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