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확증하라!
본문: 고후13:1-10
제목: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확증하라!
바울은 고린도 인들에게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확증하라” “만약 너희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면 너희는 버리운 자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 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고린도 인들이 이제 겨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받은 것인데, 고린도 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구원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를 확증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인들 입장에서는 바울의 이런 말에 굉장히 기분 나빴을 것이다.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아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데, 웬 놈이 나타나서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를 확증해보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한 말로 들렸겠는가? 그러나 당시 고린도 인들은 하나님 섭리에 대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의 육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자범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신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영적인 죄)를 사함 받는다. 그 증거로 마지막에 인간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예수를 믿는데 큰 걸림돌이 있었다. 조상 대대로 율법아래서만 살아오다보니 모두들 율법으로 의로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나타난 나사렛 촌놈을 하나님 아들로 믿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몸에 병든 자들은 예수를 찾아와서 믿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유독 몸에 병든 자들이 많았던 것은, 바로 그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로 몸이 병든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은 몸에 병도 들지 않아 당장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백성들을 율법아래 가둔 다음,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 해도 이방인들은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죄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있어야 하는데,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죄인이 될 수 없었다. 바울이 기록한 글을 보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이방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주셔야 한다. 그래야 이방인들도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한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방인들에게 주신 율법이 바로 ‘성령의 법’이다. 성령의 법은 이방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으로서, 믿는 자들은 어느 누구나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들도 모두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 또 다시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은 어떻게 오시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도 바울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하나님 아들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는 이미 12제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보낼 하나님 아들을 예표해주기 위해서다. 12제자들과 달리 바울은 율법의 대가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를 사용하신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보낼 하나님 아들 또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고린도 인들이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영)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난 후 눈까지 멀었으나, 당시 복음사역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다시 보게 되었다(행9:12참조). 바울은 그때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되었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게 되면,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고 나중에 ‘성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정반대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먼저 받게 되고, 나중에 ‘자범죄’를 사함 받게 되는데, 이는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이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날 즈음에 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자는 그럼 아들이 오시기 전에 죽은 자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온전한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신다. 구약 때도 아들이 오시기전에 죽은 자들은 모두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아들이 오신 후로는 모든 구원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아들을 믿어야 구원이다.
바울은 성령과 더불어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말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바울이 전하는 말을 믿는 자는 ‘자범죄’를 사함 받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고린도 인들이 전하는 말은 대부분 인간의 생각을 전하는 말이라서 그 속에 생명이 없다. 설사. 어떤 자가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전한다 해도 성령은, 오직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전하는 말씀으로는 이방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성령은 인간의 영(靈)(지성소)을 주관 하시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성소)을 지배하신다.
당시 고린도 인들이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신자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린도 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바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고 말했던 것이다.
똑같이 믿는 자라도,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마치, 바늘과 실이 함께 있어서 옷을 꿰매는 것과 같고, 그리스도 없이 성령으로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실이 없이 바늘만 혼자서 옷을 꿰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없이 바늘 혼자서만 옷을 꿰맨다면 옷은 결코 꿰매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당시 고린도 인들처럼 성령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고린도 인들처럼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아버지 영이다. 예수께서도 분명히 성령이 아버지 영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마10:20참조). 따라서 아직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 그 이유는, 아직 기독교인들 앞에는 바울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신 자를 보내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음은 하나님의 섭리로 본 복음사역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던 12제자의 사역이 사도 요한(AD95년경)을 끝으로 모두 끝났다. 따라서 더 이상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도 AD65년경에 죽었다. 그때부터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복음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말씀만 전해지게 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라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만 이어지게 된 것이다.
바울의 사역이 끝난 후, 지금까지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복음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이방 전도자를 세워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 이름을 믿도록 하여 성령을 받게 하신 다음,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다. 백성의 신분으로는 하늘나라에 곧장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아들을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온전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고린도 인들이 바울에게 항변 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 받은 것을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본인을 심하게 질타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 교회 목사도 성령아래서 살 때는 틀림없이 ‘성령’이 ‘그리스도 영’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내속에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계신 줄만 알았다. 나 역시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까지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바울 마음속에 빛(영)으로 들어 가셨던 것처럼, 본인 역시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예수께서 내 마음속에 영(빛)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때부터, ‘성령’과 ‘그리스도 영’이 동일한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를 말하는 것은 결코 나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유익을 위해서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들이 믿든지 말든지,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지금도 천국행 열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천국행 열차에 어느 누가 오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천국행 열차에 올라타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아들이 오셔서 하는 일은, 모든 인간들에게 아버지가 운행하시는 천국행 열차에 올라 탈것을 권면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적이지 못하고, 남들이 좋다하면 앞뒤 재보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가고, 남들이 싫다 하면 그 속내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싫다고 하는 아주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가령, 누가 이단이라고 말하면, 그의 진의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도매금으로 매도하여 이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교회가 좋다하면 앞뒤 따져보지도 안고 무조건 그 교회로 쫓아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서, 악한 영들에게 딱 미혹당하기 좋은 자들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 당시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서 오신 분이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당시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일수록, 예수께서 하고 다니는 일들에 대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었다. 예수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는 죄인의 친구라고 매도를 하는가 하면, 예수께서 안식일 날 병든 자를 고쳐주자, 유대인들이 그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라 하여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입장에서 보면, 전혀 잘 못되지 않았다. 예수는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우매한 인간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온 아들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로서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하여 하나님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들에게 도리어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생각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다. 만약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라는 생각을 기독교인들 역시 조금도 못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들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죄인들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이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던 것은, 사실 메시아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행위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매주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 아들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매한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고 살다보니, 막상 하나님 아들이 오시지만, 자신들 생각과 너무 맞지 않는다하여, 아들을 배척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예배당에서 예배만 드리고 있던,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고, 그들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영으로 들어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더 이상 사람 손으로 지은 건물에 모여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속에서 천국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더 이상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성령의 뜻대로 살게 할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거듭나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아들로 말미암아 성령의 법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이 전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한 번도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제 기독교인들은 오직 성령의 법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성령의 법에 따라 “뭐는 해도 되고, 뭐는 하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뿐, 더 이상 성도들에게 새로운 것을 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이 식상한 말만한다하여 이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다가 미혹의 영의 덧에 걸려서 적그리스도가 운영하는 이단교회에 빠지기도 한다.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고사하고, 교회에서 하는 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마저도 자기가 한말을 제대로 지키며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거스르고 있는 증거다. 그래서 현제는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힌 죄인들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고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온전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눌 때, 알곡은 반드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성령(아버지)이 아닌 그리스도(아들)가 계신 것이 확인 되어야 알곡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또한 교회에서 아무리 높은 감투를 쓰고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라도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면, 그는 쭉정이에 속하는 자이다.
아버지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지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 만큼은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결코 온전해 질 수 없고,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예수가 하늘에 오른신 후, 그리스도 영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우리가 온전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말씀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가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현제의 기독교인들)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1-14)”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