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거친반석 2014. 1. 12. 14:21

 

본문: 마태복음13:10-17

제목: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성령만 받으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모두 통달 하는 줄 알고 있다(고전2:10)” 그러나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신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과 달리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라서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현제 ‘성령(영적인 율법)’만 받은 상태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과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똑같은 백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불신자로 살던 이방인들이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다. 현재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려면, 이방인들 역시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바울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삭이 장차 이스라엘 땅에 오실 예수를 예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가 와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유대인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야곱이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도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어야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아래 태어나서 평생을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지만,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볼 때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라,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잘 믿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한 기독교 2천년 역사도 이제 그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남과 동시에 이번에도 당신의 아들을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이방인들 가운데 보내서 가을 알곡들 얼마를 수확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예수께서도 이를 두고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계16:15)”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기독교인 대부분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안도감에 빠져 영적으로 오실 하나님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도적같이 오신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고작 아는 것이라곤 그저 공중에 재림하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중에 재림하는 예수는 도적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나팔을 불며 오신다고 했다. 따라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서 도적같이 오신 예수께서는 공중에 재림하기 전에, 이땅에 먼저 오셔서 기독교인들을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구원일을 하신 다음, 마지막에 공중에 재림하셔서 땅에서 알곡으로 만들어진 자들을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들도 그리스도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아버지 영이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절대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날 수만 있었다면 그리스도는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거짓목사와 삯꾼목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역시 현재는 배나 지옥자식이 되어 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지키려고 노력해도 지킬 수가 없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노력해도 지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어서 구원에 이르려 하지 않고, 성령의 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르겠다며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것은 결국 자기 ‘()’만 쌓게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하다가 결국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나 모두 똑같은 죄다. 율법과 성령의 법을 어긴 죄는 인간의 노력(예배)이나 열심(충성, 봉사)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 것으로 율법을 거역한 죄가 도말되었다면 예수는 오실 필요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배드리는 것으로 성령을 거역한 죄가 도말될 것 같았으면 하나님 아들은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 법을 거역한 죄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해결해 주셔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앞에도 하나님 아들이 다시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악이 가득하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죄악이 마음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고 마음속의 쓴 뿌리를 모두 제거 받게 되면, 아무리 거센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의 독초(죄악)를 제거 받지 못한 자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거짓목사들의 달콤한 유혹에 모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한쪽에서 계속해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아들을 믿지 않고 도리어 눈에 보이는 표적만 쫓아갈 것 아닌가?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그치게 하여, 이때부터는 아들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역이 시작되면, 그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은 모두 폐하게 된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8-10)” 여기서 ‘온전한 것’이란 바로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방인들에게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로 표적을 나타나게 했던 것은 불신자들을 예수 믿게 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오시게 되면, 이제 백성 만드는 사역을 그만두게 하시고,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사역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 사역이 시작됨과 동시에 성령의 역사가 그치고 나면 도처에서 악령들이 성령의 역사를 가장하여 믿는 자들의 영혼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모든 악령들도 자기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최후에 발악을 하기 때문이다. 마치, 못 먹는 감 찔러나 버리자는 식으로 말이다. 그때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악령들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거짓목사들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오직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기독교인 2천년 역사가 끝나자 벌써 무저갱에서 나온 영(鬼神)들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성령의 역사라며 버젓이 교회간판을 달고 성도들의 병을 치료해준다며 성도들의 영혼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고 있다. 사단도 천사처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을 고치고 하늘에서 불도 끌어내린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병을 고칠 마음에 거짓목사들에게 무조건 자신을 맡기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귀신들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예수의 영’이라 속이고 영혼을 사냥한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가지 말라! 하늘나라(천국)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마24:23)”

 

요즘 세상을 보면 전보다 악이 훨씬 더 관영해진 것을 볼 수 있다. 말세가 다가올수록 악이 점점 더 득세하는 것은 종말이 다가옴을 말해주고 있다. 악이 관영해지면 하나님께서도 심판을 지체하지 않는다. 무저갱에서 나온 영(鬼神)들은 지금까지 사람 맛을 보지 못한 굶주린 귀신들이라 무지 사납고 포악하다. 벌써 그런 영들이 인간들을 지배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가 자기 친딸을 성폭행하는 일이나, 자식이 자기 부모를 때려죽이는 일들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없는 짓이지만, 그런 일들이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무저갱에서 나온 영들이 이미 인간들을 지배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혹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서 율법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도리어 하나님께서 이런 악한 영들을 허용해 버린다. 하나님을 무조건 사랑만 베푸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하지만, 반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악령도 허용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낸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지만, 당신의 아들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악한 영을 허용하여 더욱더 믿지 못하게도 하신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하신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을 때와는 달리 점점 더 타락으로 가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마음속에 든 죄악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할 때, 악한 영이 기독교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더욱더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두고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병들었다고 표현한다. 몸이 병들면 병원에 가서 치료라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이 병들면 어디 가서 치료받을 수도 없다. 앞으로 갈수록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죄와 더불어 악한 영이 인간을 지배하여 생긴 이런 병은 오직 하나님 아들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앞으로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게 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악한 영들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여 하나님 아들을 믿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도, 당시 가장 하나님을 열심히 믿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방해를 하였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가장 열심히 믿었던 자들이 영적으로 오신 아들의 사역을 방해하며, 또한 교인들을 선동하여 아들을 못 믿게 할 것이다.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2:17)”한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믿는 백성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배척하는 이유는, 자기 열심과 자기 의()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자기 의()로 구원에 이르려 하기 때문에 이런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자기 의()란? 예배를 포함하여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열심을 내서 마음속의 죄가 사라질 것 같았으면 영적인 아들이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열심을 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가 사람을 통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여름에 논에 김매기를 하려 들어가서 보면, 어느 것이 가라지()고, 어느 것이 벼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모든 곡식이 고개를 내밀기 때문에 그때는 어느 것이 알곡이고, 어느 것이 가라지인지 구별이 쉽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 모두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서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기 때문에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인지 당장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방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이 오시게 되면, 아들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자동으로 나뉘게 될 것이므로, 그때는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인지 자동으로 알게 될 것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열 달란트 이상을 선물로 줄 것이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한 달란트 있는 것마저도 모두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방법이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믿게 하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 믿지 못하도록 유혹을 역사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4)”고 말씀하신다.

 

위 말씀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내려 오셨더라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 유대인들 생각에는 진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면, 그는 당연히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내려왔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던 자가 그만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니 당시 어느 누가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 하여 믿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 역시 사람을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곱상하게 오신 예수와는 달리, 상당히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오실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부딪치는 돌’로 표현하고 있고,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거친 반석’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롬9:33)” 실지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엄청나게 부딪쳤다. 그렇다면 이방인들 앞에 오실 아들을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거친 반석처럼, 기독교인들 마음 곳곳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듯 숨은 죄악을 모조리 찾아내서 지적하게 될 것이다.

 

그때 자신을 ‘(성령을 거역한 죄)’인으로 깨닫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말씀이라도 그가 하시는 말씀을 모두 옳게 받아들이고 아들을 믿겠지만, 이와는 반대로 자신은 성령으로 이미 구원 받았다고 느끼는 자들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 곳곳에 숨은 죄악들을 찾아내어 지적할 때, 그것이 기분이 나쁘다며 절대 아들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하나님 아들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냐? ‘의인’이냐에 따라서 결정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악을 지적하실 때,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이 기분 나뿐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꼭 자신이 기분 나뿐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이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악을 지적하실 때, 그것이 맞다고 시인해야 '악한 영'이 떠나고, 대신 그 자리를 그리스도께서 차지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이런 자들 속에서는 절대 '악한 영'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자는 평생을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 있을 뿐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