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

거친반석 2014. 9. 14. 13:55

본문: 요한복음11:17-44

제목: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생겼을 때,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지금 병들어 죽게 생겼으니 빨리 오셔서 고쳐 주소서하고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또한 하나님 아들이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며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곳에 이틀을 더 계시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께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나사로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로써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끝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려 오신 분이다. 그런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듣고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흘 후에 예수께서 그 동네에 와보니 나사로는 이미 무덤으로 옮겨지고 없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마중나간 마르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며 다소 원망 섞인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게 될 줄을 내가 아나이다.”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며 묻는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가 갑자기 가로되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말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성경을 보면 유일무이하게 예수를 주로 고백한사람 두 명 나오는데, 바로 베드로와 마르다다. 당시 율법아래 살던 사람으로서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깨닫게 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고백했던 자들이라도,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지 않으면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서 예수를 부인하고 만다. 세례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옥에 갇힌 뒤로는 오실 그이가 당신이냐고 되려 묻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둠속에 사는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인가 안다고 하는 자들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역시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해결 받아야 할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은 언제든지 교만한 마음을 먹게 되면 귀신(鬼神)이 틈타고 들어와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당장에 그 은사를 회수해 가신다. 은사를 회수당하고 나면 그 사람은 사단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오늘날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신으로 마치는 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회수당한 자들이다. 성령 충만한 자가 은사를 회수당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속에 악신(鬼神)을 허용해버리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된다. 사울 왕이 교만하게 되자 성신을 거두어 가고 대신 악신(鬼神)을 허용해 버리자, 그가 남은 인생을 절망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자들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으면 끝에 가서는 패가망신하게 된다. 그들이 교만하게 되는 이유는,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은사는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그리스도의 능력을 맛보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에게 주신 특권으로 생각하여 함부로 남용하다가 결국은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은사를 회수당하고 신비주의로 목회하는 자들 대부분이 사단의 힘을 빌어 목회하는 자들이다. 사단(鬼神)도 능력을 나타내서 병을 고치기도 하고, 하늘로서 오는 이적과 표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어둠속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며, 이제부터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11:13)”이라고 말씀 하신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율법 아래서의 삶도 지난 2천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따라서 이제 기독교인들도 성령으로 쓰임 받던 신실한 종들의 구원 사역이 모두 끝났다. 이제부터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장차 하나님 아들이 다시 오실 때까지 자신의 신앙생활을 잘 유지해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말하고 있다. 만약 성령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라면, 바울은 유익을 구원이란 말로 바꿰서 기록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은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넌 후, 바란 광야에 도착해서 시내산에서 하나님로부터 십계명(율법)’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홍해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직도 요단강을 건너야 할 숙제가 남아 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이제 겨우 홍해바다를 건넌 상태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도 요단강을 건너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지 않고 여호수아에게 맡기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지금까지는 기독교 종들을 통해서 말씀을 들어왔다면, 지금부터는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인간의 영혼이 살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0:17)”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가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 그리스도 영이 되셨다. 영으로 계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나사로처럼 모든 인간의 영혼이 죽어 이미 무덤 속에 장사지낸바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불러내서 살리려 오신 것이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인간의 죽은 영혼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다시 살릴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라야 죽은 영혼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오늘날 의술이 발달했다고 하나, 인간의 내면을 좀먹고 있는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감히 접근도 못하고 있다. 악한 영들로 인해서 인간의 영혼은 갈수록 핍절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인간들끼리 소통하는 것도 싫어한다. 어느 누구에겐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마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지면 곧 행복이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행복은커녕 모든 인간들이 속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육신이 풍족해지면 인간의 영혼은 굶주려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끊임없이 육신의 소욕을 쫓아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영혼은 더욱더 핍절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을 때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게 되면, 그는 죽어서도 지옥이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곳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세상에 보내주시면서, 당신의 아들을 믿으라고 하겠는가? 그곳은 너무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보낸 준 아들을 믿고 어둠속에서 나와서 천국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짐승처럼 살다가 죽을 바에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만 못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인간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데도 더 많은 움켜쥐려고 발버둥 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마음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이겨낼 능력이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 이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결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인간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붙잡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다. 이제 그것을 해결해줄 분이 다시 오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람을 통해서 영으로 오신 그분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악한 영(鬼神)’을 몰아내고 인간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줄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가 무덤 속에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듯이,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 역시 그와 더불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그리스도가 우리 눈앞에 오셔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줄지라도, 우리가 그를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자라야 믿음이 자라게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만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