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거친반석 2014. 11. 2. 14:09

본문: 누가복음17:5-10

제목: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주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자는, 한마디로 자신이 죽고 예수만 살아야 한다. 그것은 내가 살면 예수가 죽고,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다. 그는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즉각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절대 자기 자신을 자랑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궂은일을 시켜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자의 삶이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

 

그런데 오늘날 주님으로부터 은혜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입으로는 맨날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오직 땅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을 하고 나서 꼭 거기에 따른 댓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고아원을 방문하여 봉사를 했다면, 그것을 누군가 알아봐주기를 바라고 있고, 또한 하늘나라 상급을 기대하며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바라고 하는 일은 전혀 하늘나라에 상달되지 않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6:3)”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무엇인가 댓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은 온통 자기 자랑으로 가득차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자기 자랑이 올라오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댓가를 바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기도하기를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討索), 불의(不義),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례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8:11,12)”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비교하여 자신의 깨끗함을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그런 기도를 받아주셨을까? 성경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도리어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세리를 더 불쌍히 여겨주셨다. 인간이 하나님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무엇인가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하고 있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교회에서 아무리 큰 감투를 쓰고 있는 자들이라도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그는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죄인이다. 죄인은, 하나님 법아래 사는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2천년 동안 하나님 법아래 살았지만, 그들 또한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죄인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살았지만,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죄인들이다. 그런데 하나님 법아래 사는 죄인들이 하나님 이름을 부른다하여, 자신이 무엇인가 다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단은 그런 자들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리스도 거듭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써 그리스도 영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신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모두가 끝에 가서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 말대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지금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육신의 소욕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성령은 인간의 영()속에 오시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이다. 성령과 달리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육신의 소욕과 더불어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鬼神)들이 모두 떠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해놓고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했다면, 이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사단의 함정에서 영영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쳐 주는 자가 없는 것은, 아직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시지 안했다는 증거다. 이를 알려주실 분은 오직 하늘로서 오신 그리스도 한분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보는 이유는, 신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성경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록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보게 되면, 100% 오해가 생기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잘못 받아들인 그것을 사단이 구원 받았다는 말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구원과정을 기록해놓은 신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보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사단에게 속지 않으려면 신약성경을 영적으로 재해석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제대로 가르쳐 줄자가 없다. 아직 기독교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이 오시지 안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독교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들 한분뿐이다.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통해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에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고, 구약과 신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만 인정할 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가 하는 일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과 육이 하나 될 수 없듯이, 예수께서 하시는 일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당연히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예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고 있는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에게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앞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人子)가 오리라!(24:42)”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인자(人子)가 다시 오겠다는 말도 공중에 재림하는 예수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계시록에 보면, 공중에 재림할 예수는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다 알 수 있도록 오신다고 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고 있다.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아무도 모르게 오시겠다는 것이다. 지금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말씀하고 있지만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영으로 오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독교인들 역시 영적으로 오신 예수가 하는 일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지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영적으로 오신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 가령,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를 허물고 영으로 오신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면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다니던 교회를 허물고 그것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도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 오신 예수를 믿으라니, 어느 누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영으로 오신 예수가 잘못되었다며, 유대인들처럼 예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신이 죄인이라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결코 방종의 기회로 삼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주신 자유를 도리어 은혜의 기회로 삼아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즉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절대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댓가를 바라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은 모두 죄에 속한다. 따라서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 여기는 자는 절대 자신의 의()나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무익한 종이 취할 자세이다.

 

이런 예로 보건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거듭난 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며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고 있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자부심 때문에 그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것과 같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자기 의()를 쌓기에 바쁘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성령의 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와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의 삶은 180도 다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이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입으로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만, 실상은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그것이 곧 믿음이요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그것으로 하늘나라 상급을 쌓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이런 행위로는 결코 영생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믿음이요 영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