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해버린다.
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15:1-27
제목: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해 버린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뜻에 따라 오셨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아들을 인간 세상에 보내주셨는가? 그것은 바로 율법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범죄’와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범죄’와 ‘원죄’를 해결할 수 없어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인가? 우리 생각 같아서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멸하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면 쉬울 텐데 왜 복잡하게 아들을 보내서 그를 또 믿어야 구원이 되는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자범죄’와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흠 없는 인간의 육체(살과 피)가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의 조상 아담이 마귀 꾐에 넘어가 그에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다시 마귀 손아귀에서 빼내오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고 데려와야 하는데,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이라 살과 피가 없다. 따라서 부득불 당신의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인간들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마귀를 멸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불법자가 되고 만다. 만약 우리 생각처럼 마귀를 그냥 멸해버리면, 우리 인간들 역시 죄악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율법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범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일부러 채찍에 맞아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도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사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다. 따라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예수 이름만 부르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와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도 예수 믿기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가 유대인들 눈에는 가시였다. 그런데 예수가 메시아라면 당연히 그들을 쫓아낼 줄 알았다. 그런데 로마군은 몰아내지 않고 도리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다니는 것이다. 그런 예수를 보고 누가 그를 메시아라고 믿겠는가?
이런 일은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다시 오시면 금방 믿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렀다고 하여 곧장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해결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만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원죄’ 하나만 해결 되었을 뿐 아직도 마음속에는 ‘자범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고 ‘자범죄’와 ‘원죄’를 해결 받아야 하듯이, 이방인들 역시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원죄’를 사함 받은 후,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다시 또 믿어야 마음속의 ‘자범죄’를 사함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유대인들도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은 후에 영생에 이르게 되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두 가지 죄 모두를 해결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방인들이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르게 된다. 만약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마지막 날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 다 타락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의 방해 때문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 모두 타락으로 갔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 대한 율법’을 주시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오늘날 기독교인이나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말았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두 백성들을 모두 율법아래 가둔 이유는,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으며, 오늘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우리도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지, 이방인들까지 구원 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성경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말씀하시고 있다. 육체를 입은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범죄’를 위해서 채찍에 맞아주셨고, 그리고 인간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은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다. 그 결과 하나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받았지만, 마음속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결국은 ‘자범죄’를 짓고 말았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이 ‘자범죄’는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 결코 해결 받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이방인이라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음속에 눈곱만큼이라도 죄가 남아 있는 자는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는 방법은, 그가 하시는 말씀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삼으면 된다. 그러면 작은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게 되어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알곡이라 부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라온 죄악의 뿌리가 단단히 박혀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든지 이 죄악과 싸워 이겨야 한다. 자신의 죄악과 싸워 이긴 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줄 것이나, 지는 자는 사단의 종이 되고 만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지면 좋아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마음 밭은 이미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빛을 싫어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일단 거부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날선 검과 같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우리의 죄악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는 곧 인간의 주인(죽은 영)이 결국 벌거숭이였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속에 꽁꽁 숨어 살아왔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악들이 파헤쳐 지는데 어느 사람(귀신)이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맞고 자신의 생각이 틀리다고 시인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합법적으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귀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심판했듯이, 그리스도 역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인인 ‘죽은 영’(귀신)들을 합법적으로 몰아내야 하기 때문에, 인간들 쪽에서 자신의 생각(죽은 영이 넣어주는 생각)이 틀리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맞는다고 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도 합법적으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귀신들도 꼼짝 못하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게 된다.
현재 이곳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서 그리스도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도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척하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맞다고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땅을 적신 후 모든 식물들을 자라게 하고 또한 먹을 만한 과실을 주인에게 내는 것이 하늘의 이치인데,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십 수 년 동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들 스스로가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지금까지 먹을 만한 실과를 내지 못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언제까지 이곳에서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기 위하여 우리 아버지께서 이를 깨끗이 하실 것이나, 그렇지 않은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해 버릴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