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책임져라!

거친반석 2016. 1. 17. 13:30

주일 낮 말씀

본문: 창세기3:1-24

제목: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책임져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따먹지 말도록 말씀하셨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가 정녕 죽으리라말씀하신다. 그러나 루시퍼의 조종을 받고 있던 뱀은 즉시 남자의 갈비뼈로 지음 받은 하와를 꾀에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다. 선악과를 먹고도 당장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하와는 다시 그것을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 먹도록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그들 속에 죄가 들어오자 비로소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 한 나머지 하나님의 낮을 피해 몸을 숨겼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아담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며 묻는다. 그러자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한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며 묻자, 여자가 대답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그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꾐에 넘어가 그만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그 실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 책임을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각각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이 모든 책임이 하나님에게 돌아가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을 만든 것도 하나님이요 뱀을 만든 것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간계이다. 루시퍼의 계략은 이 모든 책임을 결국 하나님에게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도 루시퍼와 그 졸개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을 조종하여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 특히나 이방인들은 모두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라 똥(죄악)을 먹고 사는 귀신(똥파리)들을 이용하여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 더 가관이다.

 

오늘날 인간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무조건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사단의 속성 때문이다. 이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똑같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다 죽은 영(귀신)’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된 일은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고 보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은 영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죽은 영이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따 똑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이유는, 그래야 자신이 치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그 명제가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면, 그 책임으로 인하여 그 사람은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 만약 높은 명예를 가진 자가 부정한 일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시인하게 되면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자신이 쌓아올린 명예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버티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명예를 이용하여 귀신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끝장나기 때문에 어떤 핑계를 대고라도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 모두가 어떤 사고가 생기면 그 책임을 서로가 상대방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잘되면 내 탓이요 잘못되면 조상 탓이란말이 있다. 이 속담 역시 잘한 것은 모두 내 공으로 돌리지만 잘못된 것은 모두 남에게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가정이 깨지는 이유도 알고 보면 모두 서로에게 잘못을 돌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남편은 그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다보니 집안에 큰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은 그 가정이 파탄에 이르고 만다. 이는 서로가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 넘겨서 생기는 일이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요즘은 신혼부부들도 며칠이 못가서 가정이 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세상이 풍족하게 되다보니 죄악도 함께 자라게 되어 모든 인간이 타락으로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가정파탄의 주범은 따로 있다. 인간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죽은 영이 가정파탄의 주범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죽은 영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가 발전하고 인간의 삶이 풍족해질수록 죄는 쌓여가게 되고, 이로 인해 죄악을 먹고사는 악한 영(귀신)’들은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로 인해서 인간이 만든 에덴동산(가정)은 모래성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비옥한 땅이라서 문화가 발전하고 모든 것이 풍족하게 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 끝은 죄악으로 물들게 되어 저주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인간들이 문화가 발전하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잘살게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인간의 영혼은 더욱더 핍절되어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육신의 것은 이 세상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이 세상 것으로는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 이 세상은 마귀와 그 졸개들을 가두기 위한 곳이지 결코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자들은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기에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당신의 아들을 육신을 모양으로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아들을 믿고 나오면 그들을 사단(마귀와 귀신)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은 사단의 발아래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 그리고 기독교 2천년의 역사가 끝나자 또다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하나님의 영적인 백성)들 앞에 하나님 아들을 사람을 통해 영으로 보내주셨다. 그 이유는 영적인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을 믿고 나오면 그들을 귀신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이방인들 앞에 다시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귀신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지 않는다.

 

오늘날 이방인들은 모두가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믿는 자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비로소 이방인들도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제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온갖 교회 일에 충성을 다한 자라도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저절로 도말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인은 어느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독교인들이 이 말도 이해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 주셨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는 죄가 없기 때문에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도 죄가 있어서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죽은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이 성령까지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도 어떤 일이 발생하였을 때 막상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책임을 지고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예수처럼 다시 살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목숨을 거는 일에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을 두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사실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하다보니 조그마한 일에도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창녀들을 정죄하고 비판했던 것은 그들을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불신자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들을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속에 죽은 영이 도사리고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책임을 지기 보다는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자신을 찾아오는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처럼 책임을 져주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죽은 영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가 나에 주인이 되어주실 때, 비로소 나 역시 내 가정과 내 자녀들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과 더불어 귀신들에게 지배당하여 고통 받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시는 일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