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주일 낮 말씀
본문: 누가복음18:9-14
제목: 의인(義人)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하시던 일들에 대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방해를 하였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낫게 하자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나 “왜 안식일에 일을 하냐?”며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자, “네가 사람이 되어 가지고 감히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 하는 것이냐?”며 분노를 터뜨린다. 한발 더 나아가 예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누구도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제는 “네 인육을 우리보다 먹으라고 하는 것이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신약성경을 보면 이렇게 예수와 바리새인들 간에 충돌하는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율법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바리새인들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마치, 예수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예수께서 하고자 하는 일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너무 달라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이 오히려 자기들 눈에 거슬리게 보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선의 기준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이 선의 기준이 되다보니,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바리새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줄 자가 없었다. 그들도 다 똑같은 소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것들을 깨우쳐 주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들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 이렇게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모르게 되면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어 결국은 사단의 하수인으로 쓰임 받다가 멸망으로 가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죽은 후에야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땅을 치며 통곡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이 끝난 상태에서 통곡해 바야 아무 소용없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꾸만 죽이려고 덤벼드는 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손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눅13:34-35). 안타깝게도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은 끝까지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지 못하여 모두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2천년 동안 죽어라고 신앙생활 하고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살다보니, 결국은 사단에게 속아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으나, 전도를 받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오신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는 마귀의 발아래서 해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마귀의 발아래서 해방되었다고 하여 완전한 구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이로서 이방인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고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 영적인 백성들에게 주신 법이 바로 “성령의 법”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길 경우 마지막 날 모두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방인 어느 누구도 마음으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 자동적으로 의인(義人)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듯이, 이방 기독교인들 또한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죄인이 되기는커녕 모두가 의인(義人)이 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죄인이 아닌 의인(義人)이 되다보면, 바리새인들처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되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이제부터는 세상 법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라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다 보니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모두 “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 처지와 같은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모두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하신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도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다.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던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그리스도 영”이 되셨다. 예수께서 빛(영)으로 맨 처음 다메섹 도상으로 바울을 찾아가셨다. 영은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 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했다. 당시 바울이 전하던 말씀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AD65년경 목 베임을 당하고 죽게 되자, 예수께서 전하시던 복음도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성령의 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가장 낮고 천한 사람을 택하여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셨던 예수께서 이번에는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그 사람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제 그가 전하는 말씀이 곧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사역을 하셨다면, 이제 예수께서 영으로 다시 오셔서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서 천국에 들어갈 알곡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던 가를 떠나서 그리고 자신의 높은 지위나 낮음을 뒤로 하고, 이제부터는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아니라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에 더 고무되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바리새인들처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를 하게 될 것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맨날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신다. 그래서 현재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그치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이게 무슨 소리냐?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예배드리는 것을 그치고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냐?”며,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이단괴수쯤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성전을 헐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를 죽으려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영으로 오신 예수께서 예배드리는 것을 그치고 자기를 믿으라고 하자, 바리새인들과 똑같이 예수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입장에서는 자신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를 믿으라고 한 말이지만, 이미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자를 미친놈이나 이단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지 못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그리스도가 선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이 선의 기준이 되다보니,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한번 의인(義人)이 되거나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잘못하게 되면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때 기독교인들의 교만한 마음을 사단이 붙잡고 사용하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모든 원인은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에서부터 잘못되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아래 가두어 놓은 후,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함인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르고 도리어 의인(義人)이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 역시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은 후,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길고 긴 시간을 참아오셨다. 그런데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인(義人)이 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의 교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현재 그들과 똑같은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방인들을 구원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또 다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게 되었다. 부디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은 의인(義人)이 아니라,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된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