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거친반석 2016. 6. 19. 15:40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24:3-14

제목: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지막 때는 큰 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모두 넘어지고 말게 될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계시지 않게 되면 천하 없는 어떤 누구라도 마지막 때에는 모두 넘어지고 말게 된다. 어떤 자는 절대 믿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게 되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도 결국은 넘어지고 말게 된다. 혹여 자신은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끄떡없을 거라고 여기는 자도 마지막에 가면 모두 무너지고 말게 된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 하나님께 어떠한 행동을 보였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하실 목적으로 애굽 땅에 전무후무한 재앙을 내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홍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절부절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홍해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셨다. 그리고 뒤쫓아 오는 바로 군사들을 모두 물속에 수장시키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들을 몸소 경험하고 체험한 자들이다. 그렇게 많은 체험들을 했던 사람들이 바란 광야에 들어서지 마자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애굽 땅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대려 왔느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보고 어떻게 살라고 이런 곳에 대려 왔느냐?”며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많은 이적들을 체험하고도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법아래서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믿음 없는 모습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아무리 경험하고 체험했더라도 끝에 가면 결국 변질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처음과 끝이 다르게 나타난다. 처음과 끝이 다르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처음과 끝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자기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자기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믿던 자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변질되고 만다. 왜 처음과 다르게 믿음이 변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만으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주신 성령은 기독교인들의 죄악을 해결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자신들 역시 구원에 이르게 된 줄 알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동안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서 모두가 그 법을 준수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성령의 법)을 어기게 되면 마지막 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줄 알겠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독교인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베 푸시는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마음이 부패하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이방인들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리 아시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육체에 율법을 주시고 율법아래 갇힌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영적인 백성(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기독교인들을 모두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마지막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알고 보면 이 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도 전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더러운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이다. 우리가 예수를 산 영으로 표현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영을 우리는 죽은 영으로 부른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혼()이 죽어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세상 것을 탐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죽은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라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죽은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하고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서 이런 죄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 전에는 구원 받았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악을 해결 받으려면, 육체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죄악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이 없는 이유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을 육체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만 담당하러 오셨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 받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야 비로소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이 떠나게 된다. 그러기 전에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죽은 영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 혹여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죽은 영을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겠지만, 성령의 은사는 천사의 손을 빌려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사는 인간의 죄악을 해결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다만, 성령의 은사로 외부에서 들어온 귀신은 쫓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해온 죽은 영은 예수가 직접 오셔서 쫓아주기 전에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무조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도 그리하셨지만, 부활하신 예수 역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나오는 자들만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데, 예수께서 무조건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남의 집을 침범한 범법자가 되고 만다. 이미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옛 주인(죽은 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지 않는데도, 예수께서 그 사람 속에 막무가내로 들어가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하물며 우리가 이웃집을 방문할 때도 주인이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다. 만약 허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들어가게 되면 주거 침입죄가 성립된다. 이런 원리에 따라 예수께서는 오직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만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제 갈수록 세상은 악으로 치닫고 있다. 도처에서 무차별적으로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귀와 귀신들도 이제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 때란?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앞에 나타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간들보다 영적인 존재가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리고 않고 믿는 자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야 죽으면 자동으로 지옥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마귀와 귀신들은 하나님 백성인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마귀와 귀신들에게 자기 영혼을 사냥당하고 있는 것은, 그 놈의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날마다 당하고 사는 것이다. 마귀는 인간의 몸 밖에서 세상 것을 가지고 미혹을 역사하면, 귀신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충동질한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 다시말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는 없다는 것이다.

 

귀신도 영물이라 돈을 좋아하는 자에게 돈으로 미혹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이성으로 미혹하고, 권력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권력으로 미혹하여 인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미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미 기독교인들은 세상 것에 모두 다 넘어가 있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이걸 지키고 살아갈 힘이 없다. 이런 세상 것에서 나를 지켜줄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예수만이 내 영혼을 지켜주고 사단으로 나를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예수 이름만 부른다고 하여 예수께서 나를 무조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비로소 내가 마귀와 귀신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과 싸워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즉, 죽은 영과 싸워 지게 되면 사단의 종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 2장과 3장에서도 자신과 싸워 이긴 자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고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라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은 어느 정도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과의 싸움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절대 쉽지 않다. 얼마나 이 싸움이 치열했으면 예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였겠는가?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은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세상에 많은 사람들(믿는 자들)이 이런 싸움을 피해서 넓고 큰 길을 택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넓고 큰 길로 가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문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생명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우리가 이런 모든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 안에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가 계셔야 한다. 성령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마음속에 계신 자만이 모든 환란을 이겨내고 끝까지 싸워 이기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