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주님 앞으로 달려 나오라!

거친반석 2016. 7. 24. 13:49

주일 낮 말씀

본문: 마가복음5:25-34

제목: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주님 앞으로 달려 나오라!

 

성경에는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셨던 사건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이방여자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평생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가던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까지 수도 없이 많다. 침상에 누워 꼼짝 못하던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이야기,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를 듣게 해주시고, 말 못하는 벙어리에게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샐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예수를 단순히 병이나 고치는 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율법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벌로 몸에 병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예수를 통해 고침 받았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중한 병에 걸렸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예수께서 병을 고칠 수가 없었다. 좋은 예로 예수께서 자기 고향에서 병든 자들을 고치려하였으나, 그들이 믿지 않자 병을 고칠 수 없었다. 이는 결국 믿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아래서 약2천년 동안 신앙생활 해오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자연히 율법을 지키면 저절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사렛 촌놈이 나타나서 자신을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자, 유대인들로서는 혹시 메시아가 오신 것이 아닌가 하여 한편으로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에 대하여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 예수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시험을 하며, 그가 메시아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섰으나, 예수가 하고 다니는 짓(안식일을 범하고,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을 보니 그에게서 도저히 메시아라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는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과는 다른 종교를 가진 이단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방해받지 않으려면, 예수를 죽여 없애는 것이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끝내 예수를 로마군의 손을 빌려죽이고 말았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어왔던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로 보였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예수는 도리어 율법을 범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가령, 율법에는 죄인을 멀리하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는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다녔으며, 율법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는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고 다녔다. 이러니 당시 유대인들 눈으로 보면 영락없이 예수는 자신들이 믿는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로 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예수가 메시아라면 당시 이방인들(로마군)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건만, 로마군을 몰아내기는커녕 로마 백부장의 부하를 고쳐주는 일까지 하고 다녔다. 율법생활이 몸에 밴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신앙생활과는 전혀 다른 짓을 하고 다니는 예수를 보면서,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도 앞뒤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당시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꺼려하였다. 그런 와중에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보통 마음의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찾아오기 힘든 상황이다.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단이나 다름없던 예수를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병 들었던 자들은 자신의 고통이 너무도 견디기 힘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을 무릎 쓰고서라도 예수를 찾아갔다. 예수를 찾아가서 병 고침을 받았던 자들은 모두가 깨끗한 몸이 되어 돌아왔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전역에 펴졌고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가서 병 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병 고침을 받는 그것이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레위기에 보면 율법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의 형벌로 몸에 병이 들도록 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었던 것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병 고침을 받아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새긴 자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이단괴수라고 비판해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께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만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끝까지 믿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리고, 그 다음으로 예수를 믿었던 일반 백성들에게도 성령이 내리게 되었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세상 임금인 마귀가 심판을 받고 떠나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인간 곁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고, 마지막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해결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로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를 믿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을 거듭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게 되는데, 이때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된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현재까지도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독교인들은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처음 율법을 받고 예수가 오실 때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유대인들 역시 예수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 백성에 불과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역시 현재까지는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는 죄인들이다.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이방인들이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기독교인들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실 때, 그를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고 물과 성령이 아닌 성령과 물(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게 되면, 영락없이 바리새인들처럼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예수를 배척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약2천년 동안 성령의 법아래서 살아온 하나님 백성이요 성령의 법을 어긴 죄인들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살아온 신앙생활이 몸에 밴 나머지 자연히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면 모두가 천국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시 오셔서 나를 믿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자,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를 가장한 이단이 또 하나 나왔구먼!” 단정 짓고 만다. 기독교인들이 바리는 예수는 공중에 재림하는 예수를 바라고 있는데, 사람이 되어 자신을 믿어야 구원이라고 하니, 누가 이 말을 곧이 듣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이 출현하여 자칭 예수라고 말은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예수와 같은 삶과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보니, 기독교인들로서는 식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를 사칭한 이단들이 그동안 너무도 물을 흐려놓아서 이제는 예수 자만 들어도 경기를 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 활동하시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찌 보면 아무나 예수를 믿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면 틀림없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 앞에 다시 오실 때는 이방인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 죄악을 들추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가장 성격이 까칠한 자를 사용하시게 된다. 기록된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9:33). 이를 직역하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유대인들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돌로 오셨다. 그렇지만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그리스도는 거친 반석으로 오시는 것이다. 예수로부터 거친 반석으로 쓰임 받는 자는 부득불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험악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험악한 말도 서슴지 않고 마구 내뱉는 자를 보고, 저 사람은 예수가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이단이라며 말씀을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이 바라는 예수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들의 죄를 덮어주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잘못까지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자신의 죄를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때,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부활하신 예수는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과 눈으로만 봐서는 절대 그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과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온 것과 비교해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셔서 많은 일들을 하고 다니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바리새인들로서는 도리어 그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 역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들추어내고, 그들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불편하게 해야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모르다보니, 이런 일을 하고 다니는 예수를 색안경을 끼고 이단으로 보거나, 이단으로 보지 않는 자들이라도 험악한 말을 한다며 더 이상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곧이 듣지 않으려고 한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예수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를 낱낱이 들추어내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죄인으로 손 들게 해야 하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 이유로 부득불 교인들에게 험악한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험악한 말을 하는 그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생각 때문에 결국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존중해 줄 수는 없다. 존중해주는 그것이 기독교인들을 도리어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다 하나하나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결국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만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속에서도 자신이 죽게 생긴 것을 느끼는 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자들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를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