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

거친반석 2016. 9. 25. 13:15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8:1-11

제목: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바울이 말한 이 내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지, 결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이며 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기를 당연히 자신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이 기록한 말씀은 불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내용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무조건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를 구분할까? 그것은 바로 바울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 바울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율법아래 살 때는 분명히 예수 밖에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가 예수를 만나 회심한 후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바울의 회심전과 회심후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과연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지 아니면, 밖에 있는 자인지 스스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이방인이 아니고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다. 그가 입으로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도 분명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였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영()으로 만난 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자, 바울은 율법아래서의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과 같이 처음에는 율법아래서 살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율법아래서의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을 두고 그리스도 예수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기록한 이 말씀은 결코 불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글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해서 기록한 글이라는 사실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될 수 있을까? 무조건 예수 이름만 부르면 될 수 있는가? 아니다 바울처럼 되려면 먼저 기독교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적이 없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기 전까지는 세상(사단) 법의 적용을 받고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흉내 내어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쉽게 기독교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되고 만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온갖 것을 지켜가게 하며 살게 하다가, 율법을 어겨 겨우 죽음에 이르러서야 예수 믿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없이 세상 법을 따라 제멋대로 살다가 전도를 받아 예수 이름을 부른 것인데, 그들을 무조건 구원에 이르게 한다면 정말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되고 만다. 아마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을 주지 않았더라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 걸림돌이 되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말았다. 그에 비해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데 걸림돌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신 분이기에 유대인들의 구원은 어렵게 하고, 이방인들의 구원은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는다.

 

다음 글을 보면 이방인들의 구원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는 순간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지만, 실상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그 순간이 기독교인들에게는 고통의 시작이다. 그 이유는 성령을 받지 않았을 때는 제멋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2천 동안 마음속으로 온갖 것을 지켜가며 죽도록 신앙생활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기독교인들로서는 아무리 열심히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보아도 끝에 가서는 결국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모두가 넘어지고 말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비행과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유는 모두가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넘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들도 결국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 죄 아래 가두게 되었다. 이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직접 오시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성경은 깨어 있거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라!”말하고 있다. 이때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직접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된다.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케 된다. 결국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우리 마음 가운데서 영적인 율법을 완성시켜주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들이 와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나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단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팔아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을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오셨을 때, 과연 기독교인들이 그를 하나님 아들이라고 믿기 쉬울까? 아니면 불신자들이 믿기 쉬울까?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기독교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도리어 영적인 율법이 걸림돌이 되어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불신자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은 적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데 걸림돌이 전혀 없다.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거듭난 자가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모습이라면 절대 그를 믿지 않겠지만,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전에 기독교인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아마 불신자들도 그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라고 하여 믿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기독교인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가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바울처럼 180도로 변화되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개독교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들의 삶속에서 전혀 하나님의 품성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도리어 분개하여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입으로만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자비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삶으로는 전혀 그리스도의 본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것이 그나마 사는 길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망각한 체 계속해서 교회 부흥이나 외치고 있다면, 더더욱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이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삼위일체 논리 속에 가두어 놓고 동일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단의 꾐에 빠져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듯이,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 또한 각각 다르시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아담이 범죄 하여 인간 곁을 떠났으나,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마귀가 세상 임금 자리에서 심판을 받고 떠나자, 그동안 마귀 발아래서 신음하던 인간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그리하여 마귀 발아래서 나온 인간의 영()을 성령으로 다시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는 그리스도 영이 되어 우리 마음 가운데 주인으로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이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았다면,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서는 마음속의 자범 죄를 사함 받아야 영생에 이를 수 있다.

 

하늘나라는 위계질서가 철저한 곳이다. 아들이라고 하여 아버지(성령)가 계셔야할 자리(지성소+인간의 영)속에 있어서도 아니 되고, 또한 아버지(성령)라고 하여 아들이 있어야할 자리(성소+인간의 마음)속에 계셔도 아니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귀 꾐에 빠져 또다시 하늘나라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 자가 바로 마귀다. 마귀는 그것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또다시 마귀는 인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당신이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 나라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는 다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적어도 이런 상식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마귀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누구이며 또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았다면, 이제 기독교인들은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귀신과 또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다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넘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다니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지 못했다면, 다시 말해 자기 마음속에 부활 하신 예수가 계시지 않다면, 그는 아직도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 밖에 자들은 아직도 죄에 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망의 세력을 잡 마귀가 하나님께 죄 값으로 인간들을 청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라도 어쩔 수 없이 죄 때문에 인간들을 마귀 손에 내어주어야 한다. 이런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욥기를 눈 여겨 보시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자녀들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에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절대 허무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을 철저하게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