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3:1-12
제목: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약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들려오지 않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여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목소리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세례를 받으러 달려 나오자, 요한이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 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심하게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지자를 보내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풀려나자,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 뜻대로 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살게 되면,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다. 예수가 없는 구약의 역사는 이런 생활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더 많은 죄에 거하도록하기 위해서다. 인간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들려오지 않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더 깊은 죄에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죄가 관영해야 예수가 오셨을 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앞으로 달려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빨리 찾아오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요한을 보내 회개를 외치도록 하였던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는 뜻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의 오심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세례요한을 통해 메시아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던 메시아 하고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예수가 안식일을 범하고 다니는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당연히 안식일에 병든 자(율법의 저주아래 있던 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예수가 하고 다니는 행동에 대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둠속에 사는 인간들로서는 예수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나 감히 인간 주제에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 한다며,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예수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중에는 예수를 이단괴수로 단정 짓고 말았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할 때,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알려주었건만, 어느 누구도 세례요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당장 자신들 생각과 맞지 않는다하여 예수를 이단괴수로 낙인찍어 배척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나면 그것으로 인간이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 법아래 사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기만 하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마냥 우쭐되며 교만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 했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으로 의롭게 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더 교만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하나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사는 백성에 불과하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 법아래 사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모두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자신이 성령의 법을 어긴 죽을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인간은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교만해지게 되면 자신의 잘못은 보이지 않고 남의 잘못만 보이기 때문에,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해진다. 사단은 그런 자를 교회 목사로 세워서 자신이 세운 거짓교리를 가르치도록 한다. 그런 자가 목사가 되면 또다시 교만한자를 낳게 되어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고 만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속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함부로 선생 되지 말라고 누차 경고 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회개를 외치고 있지만, 이 회개도 알고 보면 모두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회개란 모름지기 마음중심에서 해야 하는데, 이 세상 어느 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알 수 있을까? 자기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를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중심에서 회개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회개를 하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들을 들추어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앞에 달려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더하여야 영생에 이르게 되리이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고 묻자, 그 청년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쫓으라!”고 말하자, 그 청년이 근심하면서 떠났다고 되어 있다. 이 청년은 아마도 자신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했겠지만, 재산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니까 계명을 다지키지 못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자신의 잘못(죄)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으나, 부자 청년은 결국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서 예수를 떠나고 말았다. 만약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부자 청년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찾아옴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가 무엇인 줄 알았으나, 끝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는 끝내 멸망으로 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하나님 앞에 열심을 냈기 때문에 믿음이 좋을 것 같지만, 예수가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지적해주시기 전에는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미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겉으로 열심히 신앙생활만 잘하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속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병들어 가는데, 겉 사람만 열심히 신앙생활 했다는 그것으로 의롭게 되어 가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속은 암으로 죽어 가는데 겉만 진한 화장으로 꾸미고 다니는 것과 같다. 이런 자가 겉을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한들 속이 병들어 죽어 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의 속사람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마음중심에서 회개도 하고 영적인 의사(부활하신 그리스도)도 찾게 될 텐데, 자신의 속사람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보니, 맨날 수박 겉핥기식 회개를 하며 겉을 치장하기에 바쁘다.
나도 성령의 법아래 살 때는 세상에서 육신으로 짓는 죄와 마음속으로 짓는 죄와 그리고 도덕과 윤리적으로 짓는 죄가 전부인줄 알았다. 그리하여 맨날 회개할 때는 그런 죄만 회개하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빛)으로 내안 들어오셔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집안 조카가 결혼식을 하게 되어 양복을 입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섰는데, 내 속에 계신 주님께서 “너는 왜 양복을 입고 가느냐?” 며 묻길레, 당당하게 “아니! 조카 결혼식인데 깨끗하게 입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대답을 하자! “너는 결혼식에 간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너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려고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으로부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그날 겉으로는 결혼식에 가는 것처럼 하였으나 실상, 속으로는 나를 친척들 앞에서 자랑하러 간 것이었다.” 그것이 내 속에서 느껴지자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순간 낮이 뜨거워져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곧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리스도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가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서 우리 인간 마음 가운데 오셔서 밝은 빛을 비추어 주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 체 살아가고 있다. 성령을 어긴 죄인임에도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성령을 어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성령의 법아래 살 때는 내가 성령을 어긴 죄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으로 내 마음 가운데 오셔서, 내가 성령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후에야, 내가 비로소 성령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 백성으로 살 때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그 역시 하나님 법아래 사는 백성이요 죄인이다. 오늘날 성령이 충만한 자일수록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더 위험하다고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열심을 내다가 예수 앞에서 독사의 자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 법은 열 번 잘하다가 한번만 잘못해도 모든 법을 어긴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을 성령의 뜻대로 살았다 하더라도, 그중에서 단 한번이라도 성령을 거역하게 되었다면 그 역시 모든 것을 어기게 된 것이다. 가령, 십일조를 백번 잘하다가 단 한번만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모두 죄다. 주일예배를 평생 동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잘 다니다가 어떤 사정으로 인해 한번만 빼먹어도 그것 역시 하나님 앞에 죄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를 해도 이런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맨날 육신으로 지은 죄만 회개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가운데 오셔서 이것이 죄라고 정확히 알려주실 때, 그것을 시인하고 인정할 때만이 우리 마음 가운데 숨어 있는 죄가 도말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는 어느 것으로도 해결 되지 않는다.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려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많은 양을 잡아 제사 드려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말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기독교인들 앞에 가까이 오셨다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제대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주님이 오셨을 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천년 동안 죽도록 신앙생활 했지만, 거짓 지도자들로부터 의롭게 되었다는 말에 속아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배척하는 바람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죽어라고 신앙생활 했지만, 거짓목사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에 속아 마지막에 부활하여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되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