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거친반석 2017. 3. 12. 13:27

주일 낮 말씀

본문: 마가복음10:35-45

제목: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예수께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왔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실지로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어 주었다. 심지어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꺼이 내어 주었다. 이때 자신이 율법을 어겨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자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예수의 살과 피를 기꺼이 먹고 마셨다. 그러나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던 자들은, 우리가 당신의 인육을 먹어야 하냐며 거부하고 말았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은 영생에 이르게 되었고,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를 거부한 자들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죄 아래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은 오래하면 할수록 도리어 더 많은 죄만 짓게 된다. 그러나 어둠속에 사는 인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리하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하면 무조건 믿음이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율법의 금기사항을 어긴 자들은 여지없이 육체가 병들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독 병든 자들이 많았던 것은 모두 율법의 금기사항을 어긴 자들로서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 아주 더러운 죄인들이지만, 예수 쪽에서 보면 구원 받을 대상들이다.

 

율법의 금기사항을 어겨 자신의 육체가 병든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자신의 육체가 병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러 오신 예수를 보고 쉽게 믿을 수 있었다. 육체가 병들게 된 것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육체가 병들지 않았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이는 곧 자신은 죄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율법 아래서의 신앙생활과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율법아래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면 그냥 모든 인간들을 죄에서 꺼내주시면 될 것이지 왜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신다고 하셨을까?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면 될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동안 제가 하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인간의 영()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고, 인간의 혼(마음)은 귀신이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을 그들 손아귀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실 분은 오직 죄 없는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그리하여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피가 필요했고, 귀신을 멸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살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율법아래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귀신)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육체를 내어 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그런 다음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예수는 일부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다. 그 결과 율법아래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신()과 마귀(세상 임금) 발아래서 나올 수 있었다. 결국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대속물로 모두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말씀 하신 섬김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그 뜻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신 섬김이 어떻게 훼손되고 있는지 한 예를 들어보자! 몇 년 전 노회에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어서 갈일이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밥을 먹으로 가는데, 그중에 한분이 얼른 뛰어가더니 숟가락과 젓가락을 탁자위에 가지런히 갖다 놓기에 자리에 앉으면서 목사님 감사 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더니, 그 목사가 하는 말! “예수님도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는데, 우리도 그걸 따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목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교인들을 가르치는 목사들이 이 정도면, 그 밑에 있는 성도들은 물어볼 것도 없다. 요즘 목사들이 길거리에서 밥 퍼주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섬김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또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에게 대속물로 내어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처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이웃에게 대속물로 내어주려면, 자기 마음속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내어 놓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율법아래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모두 쏟아 그들을 죄에서 구원 하셨다면, 오늘날 부활하여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현재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귀신)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러 오셨다. 현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성령을 받고 세상 임금인 마귀 발아래서 나와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귀신)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다시 오신 이유는, 바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성령을 거역하도록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바로 죽은 영(귀신)이다.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않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귀신이야 웬만한 기도로도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함께 해온 죽은 영(터줏대감)”은 그리스도의 사랑(마음)이 아니면 절대 떠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진실한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진실한 마음(사랑)을 받게 되면, 죽은 영(터줏대감)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게 된다. 이때 그리스도의 진실한 마음(사랑)을 받는 자가 자신도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신의 죄악을 그리스도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게 되면, 죽은 영(귀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마음)을 받고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게 되면, 죽은 영(귀신)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 그런 자는 이미 마음이 강퍅하여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도 이미 악한 영이 구원 받은 것으로 속여 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또한 교만해져 있어서 그리스도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번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글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부딪히면서 실천해 보아야 알 수 있다.

 

요즘은 핵가족시대라 하여 그런 부모들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어머님들은 당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아까워하며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심지어 1년에 하루를 어머니 날로 정하여 그날 하루만이라도 우리 어머님들의 노고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노랫말에도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의 은혜가 하늘 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 자식은 결코 탈선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어머니의 은혜를 결코 배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식 또한 결코 삐 뚫어진 길로 갈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육신적인 사랑이지만, 사랑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하물며 육신의 사랑도 이렇게 위대할진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떠하겠는가?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를 몰아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이웃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다시 나눠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섬기려 오신 자세이다.

 

나의 진실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아무조건 없이 주려면, 내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어서는 육신의 소욕 때문에 결코 실행하기 어렵다. 예수처럼 자신을 상대방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주려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끌어 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떤 댓가도 받지 않고도 나를 이웃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줄 수 있다. 그러나 내 속에 육신의 소욕(죄악)이 남아 있어서는 절대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악한 영이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으로 하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육신으로 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본을 보이는 것이라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난 자라야 나를 이웃들에게 기꺼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때야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