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주일 낮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3:1-14
제목: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
사도 바울이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기록한 이 말은, 율법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을 책망하기 위한 말로서, 하나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의 저주아래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에 율법아래서 나와서 예수를 믿고 온전케 되라는 말이다. 그러나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왜 예수를 믿어야 온전케 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멍청하거나 둔해서가 아니다. 빛이 없이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하늘의 비밀을 누구도 알 수 없다. 당시 기라성 같은 율법학자들이 즐비했지만, 그들이 율법과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였던 것은, 그들이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 아래 사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이런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전에는 어둠속에 사는 사단의 자식이었으나, 그가 빛(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후에야 비로소 율법과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이런 글을 기록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바리새파 출신으로 율법주의자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자신은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 그가 얼마나 율법에 심취해 있었으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겠는가? 심지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로 죽이기까지 했던 자이다. 그러던 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시자, 그가 180도로 달라져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어둠속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울처럼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오늘날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약과 신약성경을 보며 신앙생활 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성경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율법과 복음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시켜서 아전인수 격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자신도 유대인들처럼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보고,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사단에게 자기 영혼을 파는 것과 같은 것이라서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기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도 사도 바울처럼 될 수 없으며,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깊은 뜻도 알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겠지만,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직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율법과 복음을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시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이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에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이방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을 다시 보내주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예수가 오셔야 하듯이,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이방인들 앞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율법”이 무엇이며 또한 “영적인 복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설명해 주셔야 한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율법과 복음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몰랐다가, 예수께서 오셔서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신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합당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영적인 복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현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백성의 신분으로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만 부르면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기독교인들이 지은 죄는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이다. “자범죄”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고 지은 죄를 편의상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지은 “자범죄”를 사함 받지 못하게 되면, 제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자라도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산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죄를 억누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 역시 2천년 동안 그리스도 모형을 붙잡고 신앙생활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 모두가 알고 보면 모두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주일날 예배당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도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다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들을 모두 청산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겠다고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바울 말대로 성령의 법을 하나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경우, 율법의 저주아래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 어느 누가 성령의 법을 온전히 지켜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당신이 보낸 아들을 믿고 죄에서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누가복음5:38절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의미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께서는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눅5:39). 묵은 포도주에 한번 맛을 들인 자는 좀처럼 새 포도주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이 몸에 밴 유대인들로서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복음)이 너무나 생소하고 자기들 생각과 너무도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약 2천년 동안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이 몸에 밴 기독교인들로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하시는 말씀(영적인 복음)이 너무나 생소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고 쫓으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선뜻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도 세리와 창기처럼 목마른 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천국에 목마른 자들을 위해서 발 벗고 찾아 나설 것이다. “깨어 있거라! 내가 도적같이 가리라!”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