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내 안에 있는 자아를 깨뜨려라!

거친반석 2017. 9. 10. 13:24

주일 낮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5:16-24

제목: 내안에 있는 자아(自我)를 깨뜨려라!

 

바울이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서 성령을 온전히 쫓아 사는 자가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바울은 성령을 쫓아 살라고 말하는데, 왜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을 쫓아 사는 자가 없을까? 그것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육체의 소욕 때문이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쫓아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은 불신자에게도 있고, 믿는 자에게도 있다. 믿는 자라고 해서 육체의 소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신자로 살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육체의 소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육체의 소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바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아무리 충만하게 받아도 마음속에는 육신의 소욕()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불신자로 살던 자가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또 어떤 자는 자기 전 재산이라도 다 받칠 것처럼 난리법석을 피운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성령의 충만함은 온데간데없고 불신자와 똑같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이렇게 흘려가고 있다. 이는 바로 기독교인들 모두가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자범죄)”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살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다보니까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치, 율법으로 의롭게 된 줄 알고 있다가 예수를 믿지 못해서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다가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지 못하여 바리새인들처럼 멸망으로 가게 될까봐 걱정이다.

 

인간에게 ()과 혼()”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두 가지 죄가 있다. 하나는 아담이 지은 원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 법을 어기고 지은 자범죄이다. 원죄는 인간의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지은 죄이고, 자범죄는 내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지은 죄이다. 이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중 한 가지 죄만 해결 받아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도 모두 인간의 영과 혼이 지은 죄를 해결받기 위해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반쪽짜리 구원만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과정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살을 먹는 과정이다.

 

그리고 원죄는 내가 지은 죄가 아니고 아담이 지은 죄라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흘려죽게 함으로써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원죄를 해결 받은 자는 마귀 발아래서 자유를 얻었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게 됨).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기고 인간 스스로 지은 (자범죄)”, 내가 하나님 법을 어기고 스스로 지은 죄이기 때문에, 내 죄를 직접 들고 예수 앞으로 나아가서 해결 받아야 한다. 이를 쉽게 정리하면,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예수 이름만 불러도 해결 받을 수 있으나(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값없이 쉽게 받을 수 있던 것도 이와 같은 원리에 따른 것임), 자신이 하나님 법을 어기고 지은 (자범죄)”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들 앞에 각각 인격적으로 보내주신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만 해결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은 아들(예수)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자들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도록 해주셨고,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는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예수)를 마음속에 모신 자를 다시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방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오는 자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가 해결 되어 영생에 이르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의 무식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해결 받을 수 있는 죄는 오직 아담이 지은 원죄하나뿐이다. 따라서 아직도 이방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 받아야 영과 혼이 온전케 되어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럼 기독교인들은 누구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다시 오시게 되는데, 이방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사람을 통해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의 이 말은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때만 적용받을 수 있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이 말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려면 자신이 과연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만약 바울 말대로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아직도 율법(성령의 법)아래 놓여 있는 죄인이다. 아직도 율법(성령의 법)아래 놓인 죄인은 육체의 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 이런 죄에서 온전한 자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런 자는 성령의 법에서 자유를 얻은 자이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의 법에서 자유를 얻은 자가 한명도 없다. 그 이유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앞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제 곧 기독교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다.

 

어린애는 욕심이 별로 없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 또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이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간이 점점 자라게 되면, 마음속에서 자아(自我)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인간이 성장하는 만큼 인간의 자아(自我) 또한 계속 자라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육체의 소욕 또한 강해져서 욕심 또한 많아지게 된다. 욕심이 많아지게 되면 세상 것을 움켜쥐려고 더욱더 혈안이 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은 결국 욕심 때문에 망하게 된다. 육신을 입은 인간이 욕심을 내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욕심을 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모두가 욕심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이다.

 

자아(自我)가 강한 자들도 하나님의 율법(성령의 법)아래서는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어야 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은, 모두 자신의 자아(自我)를 내려놓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 우리가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하는데, 자아가 강한 자들은 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아(自我)가 강한 자들은 아들을 믿기가 절대 쉽지 않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이유 또한 모두 자아(自我)가 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럼 이렇게 강한 인간의 자아(自我)를 누가 무너뜨려 줄 수 있는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빛()으로 사도 바울 마음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께서 빛()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만이 우리의 자아(自我)가 무너지고 말게 된다. 우리의 자아가 무너지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도 양자의 영(그리스도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