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15:1-16
제목: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열두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나, 앞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자, 비로소 제자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제자들도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라서 자신들을 잡으러 다니는 관원들이 무서워 마가다락방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다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임하자,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이 담대히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셔서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알려주기 전에는 제자들이라도 정확히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 앞에서 여러 가지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실 때, 율법을 거역한 “죄”를 미리 사함 받을 수 있었으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예수께서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야 오실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제자들도 관원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며 온갖 실수를 저질렀던 것도 알고 보면 모두가 성령을 받기 전이라서 그런 것이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던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것도 그가 성령을 받기 전이라 그런 우를 범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제자들이 믿음 없다는 것을 설교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과연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을까? 외람되게도 아직 한 사람도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아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의 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에 성령을 먼저 받는다. 하지만, 아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속의 죄(성령을 거역한 죄)까지 사함 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믿음이 온전한 사람 또한 한명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을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성령을 받은 후로 사라졌는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면 금방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으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나중에 성령을 받고 “물(살)과 성령(피)”으로 거듭나게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먼저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아담이 지은 “원죄”하나만 해결 받는 것이라서 성령 받은 것만으로는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의 계획은 기독교인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령의 법(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살게 하신 후, 마지막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곧 바로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긴 하지만,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고, 그때부터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령의 법(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을 살아야 한다. 그런 후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를 믿는 자들이 “성령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유대인들이 “물(살)과 성령(피)”로 거듭나는 것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반대로 “성령(피)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살)”을 먹고 거듭나게 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열두 제자들을 가지로 비유하고 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예수와 제자들은 하나가 되어야만 실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과정을 설명한 내용이 바로 위해서 말한 내용들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통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부활승천 하시고 난 후 성령이 제자들에게도 임하게 되는데, 열두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를 믿었던 모든 유대인들이 마지막에 오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비로소 유대인들은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 가지 비유이다. 하지만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을뿐더러 성령 또한 임하지 않게 되어,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도리어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어 들 포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이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를 심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가 맺혔도다”(사5:2)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극상품 포도를 얻게 위하여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던 것이지, 결코 들 포도를 얻기 위하여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율법아래서는 극상품 포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통해서만 극상품 포도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의 열매일까? 아니면 아직도 들 포도에 속한 자들일까? 한마디로 아직 기독교인들은 들 포도에 속한 자들이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 앞에는 아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 받은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만 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법 아래서는 극상품 포도가 열릴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주셔야 극상품 포도가 열리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들 포도에 불과하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은사)가 나오는데, 이는 장차 부활하여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보니 죽었다 깨어나도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절대 변하면 안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열매)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변하고 만다.
가령, 성령의 은사로 암을 치료받은 자가 또다시 세상의 정욕을 쫓아 살다가 다시 암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뿌리 뽑아야 하는데, 그걸 뿌리 뽑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재발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어떤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더니 좋아 하더니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귀신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악을 뿌리 뽑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성령의 은사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절대 뿌리 뽑지 못한다.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처음 성령을 받을 때와는 달리 끝에 가서 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악 때문에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온전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은 진짜 열매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에 불과한 것들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히브리서는 “첫 것을 폐하심을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라”(히10:9) 말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첫 것으로 주신 것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이요 둘째 것으로 주신 것을 믿어야 진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속에서도 극상품 포도를 얻기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통하여 이방인들 속에다 극상품 포도나무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 분명히 처음 씨앗을 뿌릴 때는 극상품 포도나무 씨앗을 뿌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두들 들 포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아직 온전치 못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사단이 교묘히 이용하여 모두 들 포도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를 얻기 위하여 또다시 당신의 아들(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그를 믿고 나오는 자들을 극상품 포도로 낙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럼 극상품 포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그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 마음속에 빛(영)으로 들어가셨던 것처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영(빛)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옛사람(죄악)이 죽고 새 사람(그리스도로 거듭남)이 된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그때부터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겉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관한 말씀(영적인 말씀)만 하시는 것이다. 그런 자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서 상대방이 그 말씀을 좋게 여기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람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자기 마음속에 분명히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성령 받은 것을 내세워 자신도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우기고 있는데, 이런 자는 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뿐,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런 자가 바로 여기에 어울리는 자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극상품 포도 열매를 맺힐 수 있었다면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겠는가? 율법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는 절대 극상품 포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서 그를 믿고 나오는 자들을 극상품 포도로 낙점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 아래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극상품 포도를 열매 맺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또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서 그를 믿고 나오는 자들을 극상품 포도로 낙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여 다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성령을 어긴 죄를 엄히 물어 중한 죄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