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0.1%의 죄까지 모두 찾아내라!

거친반석 2017. 10. 1. 15:04

주일 낮 말씀

본문: 누가복음16-18

제목: 0.1%의 죄까지 모두 찾아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주시고 그 아래서 2천년 동안 살게 하셨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 동안 살게 하셨다. 그러나 육체에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기독교인들 또한 어느 누구도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마지막에서 가서는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죄 아래 갇힌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이방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다.

 

그런데 두 백성들 모두가 율법(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똑같이 믿지 않는 것이다. 두 백성들에게서 왜 이런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 것으로 주신 것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으로 주신 것에 불과한데, 모형으로 주신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말씀이 히브리서에 기록되어 있다.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10:9). 이 말씀이 갖는 의미는 그리스도 모형으로 주신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 기록한 이 말씀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했던 모든 것이 실상은 그리스도를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따라서 둘째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는 둘째 것에 참여하게 된다.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말씀을 충분히 숙지하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문 말씀이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하여금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옛날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집집마다 호롱불을 밝히고 살았다. 그때 호롱불을 높은 곳에 매달아 놓으면 불빛이 넓은 곳까지 퍼져 나갔다. 예수께서는 지금 그 비유를 들어 자신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다. 등불이 어둠을 밝힌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을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본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줄 빛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줄 빛이 없다면 인간은 한평생을 어둠속에 살다가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게 된다. 예수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땅에는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도 유명한 신학자와 목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 성령을 받아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목사들이 교인들의 내면을 밝혀주는 빛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빛을 밝혀주는 줄로 알고 있지만,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셨지, 기독교인들 마음속을 밝혀주는 빛이 아니다. 만약 성령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을 밝혀주는 빛의 역할을 했더라면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타락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가 없는 굴에서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빛이 없는 곳에서는 어둠이 왕 노릇한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그의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다. 인간의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게 되면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표현하게 된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어둠을 밝혀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법을 주러 오신 분이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결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어둠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2:3) 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기 때문에 임할 때 반드시 불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내주하지 않는다. 만약 성령께서 더러운 인간의 마음속에 내주하게 되면,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 되므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게 된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소 달구지에 실려 블레셋에서 돌아오던 하나님의 법궤를 들어다 본고로 하루에 오만 칠십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일하실 때도 모두 불로 임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을 때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오시는데,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는 유대인들의 죄를 낱낱이 지적하셨다. 예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제대로 알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오셔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다 알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어둠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숨은 죄악을 다 찾아낼 수 없다.

 

유대인 중에서 유일하게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사역을 펼쳤던 자이다. 12제자들이 육체의 죄(율법)를 죄를 먼저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아 사역을 펼쳤다면, 사도 바울은 12제들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빛()으로 먼저 빛()으로 만난 후 나중에 성령을 받고 사역을 펼쳤던 것이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정오의 빛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눈이 멀게 되었고, 눈이 먼 그를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며 보게 되었는데, 그때 비로소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면, 그것으로 유대인들은 구원이 완성되게 된다. 예수께서 12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은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펼쳐질 구원의 역사를 바울을 통해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의 구원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먼저 받은 다음,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게 되면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칠흑같이 어둔 밤이라도 밝은 대낮처럼 밝아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들어오시게 되면 더 이상 죽은 영()”도 숨을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힘을 잃고 말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하는 회개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죄를 찾아내서 회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저지른 죄밖에는 더 이상 찾아낼 수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리 회개를 하고 또 해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모두 찾아낼 수는 없다. 이렇게 성령의 법 아래서는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또한 절대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외부에서 인간의 생각을 틈타고 들어온 귀신이야 성령의 은사로도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함께 성장해온 죽은 영(죄악)”0.1%의 죄만 남아 있어도 절대 떠나지 않는다.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몰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지어 똥냄새만 풍겨도 똥파리는 날아든다.

 

성령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정오의 빛보다도 더 밝은 빛이 인간의 마음속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혀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0.1%의 죄까지도 모두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죽은 영()”도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걸 경험한 자는 자신을 바울처럼 죄인 중에 괴수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자신의 죄를 다 찾아내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이 입으로는 주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죽은 영의 지배를 받다보니 세상의 풍류를 따라 사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부디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하고서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쭉정이로 버림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다가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가를 생각하라!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