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성령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

거친반석 2017. 10. 8. 13:16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8:1-11

제목: 성령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

 

성령의 법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법 또 무엇인가? 성령의 법은 한마디로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다 율법을 주셨지만,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육체에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듯이,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또한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율법(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짓고 율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이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셔서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고,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적인 율법(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이란?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모두가 죄 아래 갇히게 되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셔서 기독교인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죄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에게서 자유를 얻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사망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 발아래서 자유를 얻게 됨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기독교인들이 본문을 읽으면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직 바울이 기록한 이 말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말하는 것은,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란 영적인 율법(죽은 영)과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지 아니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을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기독교인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는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좀 더 확실한 방법으로 완성시켜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럼 성령의 법아래서 사는 삶과 그리스도의 법아래서 삶이 어떻게 다른지 기독교인들의 삶을 통해서 이를 증명해보자! 먼저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한마디로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을지라도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불교신자가 절간에 아무리 오랫동안 다녔어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듯이, 그리고 무슬림들이 알라에게 매 시간마다 기도를 해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듯이, 또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성령의 법아래서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건 불교나 무슬림이나 유대교나 기독교나 믿는 대상만 다를 뿐 다를 봐가 하나 없다.

 

기독교인들이 바울 말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기독교인들을 해방하였다면기독교인들은 지금쯤 모두가 속사람이 변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기독교인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옛사람 그대로 있다면, 이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법 아래서의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손가락 하다도 까딱하지 않고 감나무 아래 누워서 감이 자기 입속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게 된 것도 순전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덕분이지, 이방인들이 무슨 노력을 하거나 덕을 쌓아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천국도 거저먹으려 드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 속에 살다보니,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감나무 아래 누워서 감이 자기 입속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로또복권 통계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814만대 1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평생 동안 살면서 벼락 맞을 확률은 90만대 1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감이 자기 입속으로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로또나 벼락 맞을 확률보다는 높다하더라도 여전히 어렵다. 이는 그만큼 성령의 법 아래서는 천국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쉽게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또 다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셔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좀 더 활짝 열어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자기를 연못에다 넣어줄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며 묻자, 그 병자가 말하기를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5:7) 그러나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율법아래서는 죄 때문에 구원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율법아래서는 38년 된 병자처럼 누군가 자기를 들어다 연못에다 넣어주지 않으면 낫기 힘들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앞에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연못에다 나를 들어다 넣어줄 필요 없이, 그냥 그가 하시는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지게 된다. 아까 위해서 말한 것처럼 성령의 법 아래서는 모두들 감나무 아래 누워서 자기 입속으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자기가 감나무에 직접 올라가서 감을 따먹으면 된다. 알고 보면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런데 고정관념 틀 속에서 살아온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직접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먹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아무 노력도 안하고 하나님께서 주는 것만 받아먹으려는 못된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이제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11:12-13)고 말씀하시고 있다.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는 엄마가 주는 젖만 받아먹는다. 그런데 돌이 지나서 걸을 때가 되었는데도 이 아이가 일어나 걷지를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엄마가 주는 젖만 받아먹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가 측은해서 몇 번은 더 젖을 주겠지만, 이러다가는 아이가 영영 걷지 못하고 누워만 있게 될까봐 엄마는 젖을 주지 않고, 네가 스스로 일어나서 이제는 밥을 먹으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아이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엄마는 그래도 아이를 생각해서 젖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계속해서 젖을 달라며 울며 보채는 것이다. 이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 엄마가 어떻게 해주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스스로 일어나서 밥을 때까지 계속해서 젖을 먹여 주어야 할까? 아니면 젖을 떼고 스스로 일어나서 밥을 먹도록 가르침을 주어야 할까? 율법(영적인 율법)”아래서의 삶은 마치, 누워 있는 어린 아이에게 계속해서 밥을 먹여주는 것과 같다. 만약 누군가 밥을 먹여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당장에 굶어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법 아래서의 삶은,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일어나서 직접 밥을 떠먹게 하는 것이다. 법 아래서는 인간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무조건 천국에 대려다 줄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강제로 천국에 대려다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서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만 천국에 들여보내라는 것이다. 아들을 믿고 아니 믿고는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자!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으면 무조건 천국 가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본인들에게 왜 성령을 보내주셨는지, 그리고 성령이 자신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를 모르다보니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고, 우리도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처지가 잘 보이지 않으면,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삶을 자신들과 비교해보면 자신의 처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 역시 율법만 지키면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 무조건 천국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율법은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율법아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도리어 율법으로 의인(義人)이 되어 예수를 배척하고 말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만 받으면 모두가 하나님 자녀가 되어 천국 가는 줄 알고 있지만, 죄 가운데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도리어 구원 받은 의인(義人)이 되어,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배척하고 말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을 얻으려면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오셔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은 의(그리스도)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8:10).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지 말고, 반드시 부활하여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가 빛()으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가실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