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속에다 성전을 지어라!
주일 낮 말씀
본문: 요한복음2:13-22
제목: 너희 마음속에다 성전을 지어라!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규례에 따라 약2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외세의 침략이 빈번하였지만, 그때마다 흩어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예루살렘 성전이 구심점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그런 성전을 헐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요 도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거기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으니, 당시 어느 누가 보아도 예수를 온전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모여 예배드리고 있는 예배당(교회)을 헐고 “나를 믿으라!”고 한다면 과연 기독교인들이 그 말을 듣고 가만있겠는가? 아마 이단괴수라며 당장이라도 처 죽이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께서 왜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였는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셔서,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당을 헐고 자신을 믿으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전후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예배당을 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다하여, 그를 무조건 이단시하며 미친놈이라고 욕한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다를 봐 없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예수께서도 누구보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성전을 헐라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도,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서는 결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이며, 또한 짐승의 피로는 인간의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에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가 소달구지에 실려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뿐 나머지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본고로 모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런 원리에 따라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던 것은 모두 천사를 통해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추켜세우던 아브라함도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새긴 돌 판을 여호와로부터 직접 받았던 모세 역시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을 헐라고 했던 것은, 그동안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하던 것을 버리고, 이제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라는 것이다. 내가 바로 소와 양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여, 자신들을 대신하여 산 제물이 되어 주시겠다고 오신 분을 문전박대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떨까? 유대인들이 율법의 규례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하였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에 따라 예배당에 모여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다른 점이 있다면, 소와 양이 예수 이름으로 바뀐 것뿐이다.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은,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죄에서 온전케 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을 직접 만났다고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아직 하나님(성령)을 직접 대면한자가 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성령)을 직접 대면하게 되면, 죄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이런 원리에 따라 아직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예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라는 것을 주셨는데, 성령의 은사가 바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천사도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할 수 있지만, 인간의 죄를 사하는 일 만큼은 천사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중에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고 은사를 많이 받은 자라도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모세나 엘리야 같은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인간의 죄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는 오시는 이유는, 성령의 은사 즉, 천사의 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는 해결 받았기 때문에, 이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성령을 거역한 죄)”만 해결 받으면 누구나 하나님 자녀가 되어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자범죄”를 해결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던 방법으로는 어림없다. 그동안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그것으로 마음속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성령의 능력을 많은 받은 자라도 그것으로 자기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빛(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성령)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만 인간들을 만나주시는 것이다.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지만,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비로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 가보자! 예수께서 성전을 헐라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만약에 성전을 헐지 않고 그대로 두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것이기 때문에, 성전이 없어져야만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다시 오셔서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당을 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면 이 또한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이 없어지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예수 이름으로 예배드리는 일을 그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나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는 사람 손으로 지은 건물에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내 마음속에 모셔야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우리 마음속에 짓게 된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닳아 없어지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세워진 성전은 나와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