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이 다른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주일 낮 말씀
본문: 갈리디아서3:1-14
제목: 시작과 끝이 다른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며 갈라디아 교인들을 심하게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갈라디아 교인들은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으나, 끝까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육체로 마치려 하였을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로서 이방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이방인들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법(말씀)대로 살 것을 종용하러 오신 분이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 없애주러 오지 않았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신 일이라, 성령께서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절대 관여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육체로 마치려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고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무조건 구원 받은 줄 알고 좋아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당장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다가 예수를 믿고 마지막에 성령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곧장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다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출발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하여 모세를 통해 십계명(율법)을 받고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넜다고 해도 아직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곧 방종의 삶으로 이어져서 결국은 바리새인들처럼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구원이 정 반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짓고 율법아래 갇혀 있던 것을 예수께서 오셔서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심판한다. 이것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는 과정이다.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아담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각 사람에게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로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구원이 완성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걸림돌이 있었다. 그동안 거짓 선생들로부터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천국의 주인이 자신들 눈앞에 와 계셨지만,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의 구원은 유대인과 정 반대로 이루어진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심판하자,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방인들 각 사람에게 오신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마귀 발아래서 사단의 백성으로 살았으나,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는 하나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말씀(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말씀(법)을 어길시에는 유대인들처럼 율법(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죄악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유대인들처럼 모두가 율법(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만다. 성령의 법아래 갇힌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통해서 도적같이 다시 오시는데, 기독교인들은 도적같이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까지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과 비교해서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 제아무리 성령 충만한 자라도 끝에 가서는 모두가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그토록 세상과 단절하며 목회에 충실하던 목사라도 끝에 가서는 세상과 타협하고 마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부자 세습은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목사도 끝에 가서는 결국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 자녀라고 큰소리치던 자들이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의 특성을 따라 시작과 끝이 다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시작과 끝이 다른 것을 두고 성경은 이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령의 법(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주소이다.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시작과 끝이 일치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시작과 끝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기독교인들은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시작과 끝이 다른데 어떻게 구원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하늘나라를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럼 어느 누가 시작과 끝을 똑같이 마칠 수 있을까?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없으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야만 우리 인간들도 가능해진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그도 자기 생각에 젖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짓을 하였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는 180도로 변하여, 세상 유혹과 육체의 소욕을 모두 이기고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사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좌정하시게 됨으로, 그때부터는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소욕도 능히 이기고 하나님 자녀로서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양자의 영(그리스도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성령만 받아서는 결코 시작과 끝이 일치할 수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없다. 만약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신다면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우리 이방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靈),혼(魂),육(肉) 중에서, 마귀 발아래서 나온 우리의 영(靈)을 다스려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모두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죽은 영)”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인간들이 먹고 살기에 바빠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며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그때 “악한 영”이 슬그머니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서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선하게 지음 받은 천사라도 하나님 곁을 떠나게 되면 마귀로 변하듯이, 인간들 역시 성령과 멀어지게 되면 “악한 영(귀신)”의 하수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굳이 예수께서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갖고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결코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일부러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걸 해결해 주시려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