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8:1-11
제목: 성령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구원에 이른 줄 알고 우쭐되다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으로 구원 받은 줄 알고 우쭐 되다가는 영락없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
위 말씀을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면, “성령의 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날마다 드리는 똑같은 예배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만약 기독교인들이 단 한 번의 예배로 정결케 될 수 있었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뇨? 그러나 이런 예배들은 날마다 죄를 생각나게 할뿐,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똑같은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오늘 본문 말씀(로마서8:1-2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본문 말씀을 액면 그대로 자신들에게 적용하여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바 대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적용이 가능하다. 만약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본문 말씀(로마서8:1-2절)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꼼짝없이 사단에게 속고 만다.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쉽게 이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방인들은 그동안 사단이 주는 세상 법을 따라 살다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이제 겨우 성령을 받아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100% 사단에게 속고 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바리새파 출신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자이다. 그러던 자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여 빛(영)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회심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은, 그냥 단순하게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 마음속에 영으로 직접 들어가셨다는 것을 뜻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직접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자, 바울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자범죄)”가 비로소 도말 되었다. 그런 후 바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받고,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모두 사함 받고 나서야 온전케 될 수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경우를 오늘날 기독교 목사중 한 사람으로 비유하여 설명을 해보자! 기독교인 중에 김선한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정통 신학교를 나와서 정통 교단에 몸담고 있는 목사다. 그는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아 귀신을 내쫓기도 하고, 병든 자들을 많이 고쳐주었다. 그는 신앙생활에 충실하여 나름대로 성령의 법도 아주 잘 지켰다. 혹여 기독교인 중에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는 자들을 보면 그는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하나님 법(성령의 법)을 잘 지키기 위하여 그는 교인들이 주일날 예배 끝나고 야외로 놀러 나가는 것도 철저하게 막았다. 그런 그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두고 또 다른 예수를 믿는 자들이라 하여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이단이라며 핍박하고 괴롭혔다. 김목사는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세상에서 암매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로 믿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사울로 살아갈 때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을 어찌나 핍박하던지, 그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그에게 영으로 직접 찾아오신 것이다. 김목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그가 성령의 법아래서 하던 짓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신학교에서 배웠던 신학지식과 세상에서 배웠던 모든 학문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동안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했던 모든 것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독교인들 향하여 양심 선언을 한다. “기독교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니 나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지 말고 제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는 말로 기독교인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각 교회마다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고백하며, 바울처럼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며 기독교인들 향하여 쉼 없이 천국복음을 외친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은 그를 미친놈 취급하며 그가 하는 말을 전혀 곧이 듣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경우를 두고 “받은 자 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김목사처럼 성령의 법아래 살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사람만이, 오늘 본문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마치 사도 바울이라도 된 것처럼, 오늘 본문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시켜서 구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김목사의 경우에서 보듯이 아직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 구원 받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아직 구원 받지 못했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나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악이다.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죄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으로서, 이 죄는 성령을 받아도 도말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도말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하나님 영이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도말하여 주지 않는다.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악이 모두 도말되고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도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미음. 시기, 질투, 음란, 거짓, 분노, 욕심)”등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해진다.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기독교인들은 본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단,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었던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시는데, 이때 성령을 받은 자들이 따라 살아야 하는 법이 바로 “성령의 법”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타락의 길을 걷고 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을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현재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죄인들이다. 이걸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오늘 본문 말씀을 액면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하여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교인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율법아래 살던 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는 순간! 그들또한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가르치기 때문에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고 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 살던 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순간!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잘못 가르치기 때문에 교인들을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고 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체험을 것을 바탕으로 하여 글을 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구원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100% 사단에게 속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왜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신앙생활 하였을까? 이는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도 바울 이후로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내 자의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빛)으로 내 마음속에 오셔서 이런 사실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본 교회 홈페이지에서 나의 간증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생활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무슨 수로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었겠는가? 이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게 오신 것은, 내가 의롭거나 선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다.
오늘날 제아무리 큰 교회 목사라도 또는 유명한 신학교수라도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목사라도 이런 비밀은 알 수가 없다. 이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제라도 이런 사실을 알았거든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있는 자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과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눈앞에서 말씀을 들려줘도 “악한 영”이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