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주일 낮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1:6-10
제목: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사도 바울은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이방인들은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울이 잠시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보니,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이 전해 준 복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난 바울은 “내가 전에도 말했고 지금 또 다시 말하지만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재차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라디아 2:11-14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구절을 요약하면 이렇다. 베드로도가 안디옥에 이르러 무할례자(이방인)들과 식사(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음)를 하던 중 율법을 앞세우는 유대인들이 오자,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식사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러자 베드로와 함께 음식을 먹던 유대인(예수 믿던 자)들과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외식에 물들어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이 베드로에게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쫓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며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 사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후 삼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고 나자,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담대하게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라고 외치고 다니며, 병든 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자, 그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예수를 믿지 않던 율법주의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제안은 간단했다.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자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하는 일은, 서로 상반되는 일이라서 절대 성립될 수 없다. 가령,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의 규례에 따라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그쳐야 한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또다시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계속한다면 도리어 하나님을 욕보이는 짓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바울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짜낸 고육직책이다. 이 같은 행위가 겉으로 보면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 같지만, 실상은 사단이 인간의 두뇌를 아주 적절히 이용하여 꾸민 계략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일까? 외람되게도 기독교인들 역시 아직은 천국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다. 그 이유는 아직 기독교인들 중에는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에 기독교인들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다음 글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바른 복음 즉, 천국복음이란? 바울처럼 율법아래 살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전하는 복음이라야 “천국복음”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제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서 천국복음이 될 수 없다.
현제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이방 불신자들에게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믿게 하여 땅에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현제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서는 이방인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서는 땅에서 하나님 백성 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천국복음은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전하는 말씀이라야 “천국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 또한 천국복음이라고 우길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만 들어오실 수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전하는 복음은 천국복음이 아니고, 이방 불신자들에게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하여 땅에서 하나님 백성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천국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려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좌정하시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셔서 전하는 말씀이라야 천국복음이 될 수 있다.
결국 천국복음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입을 통해 직접 하시는 말씀이라야 “천국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오직 당신의 아들에게만 주셨다. 이런 원리에 따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이라야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된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아무리 목사들이 많은 말을 전해주어도, 목사들의 말씀을 듣고 서는 결코 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 역할만 하시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성령을 힘입어 말씀하시더라도, 그 말씀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에 학습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이라고 외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 둘씩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태어난 자들이 여기저기 나타나서 담대하게 “천국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그때까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던 자들 또한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반신반의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처음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얼마 되지 않아 거들떠도 보지 않던 자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하나님 아들들이 도처에 나타나서 천국복음을 전하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급기야는 하나님 아들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것이다. “주일날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도 믿자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도 믿고 성령의 법(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도 지켜야 하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일이라서 절대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에도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율법과 복음이 공생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가령,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성령의 법(율법)에 따라 매주일 마다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행위를 그쳐야 한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또다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일은, 도리어 하나님을 욕보이는 짓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기독교인들은 무슨 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성찬식을 거행한다. 성찬식의 의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성찬식의 의미는 없어진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가 계속해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바울 말대로 율법의 저주아래 있게 된다. 예수님 당시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율법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 또한 하나님 아들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사단은 예나 지금이나 율법에 사로잡혀 사는 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던지 그리스도가 전하는 천국복음을 못 듣게 해서 자기 목적을 달성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율법과 복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둘이 서로 공생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유대인들이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행위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서 크고 화려한 것에 매몰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마음으로 믿지 않고서는 결코 예수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율법주의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찾다가 결국은 천국의 문턱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 또한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서 크고 화려한 것에 매몰 될 수 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것을 찾는 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령(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이 곤고해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마음이 이미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세주가 자신들 눈앞에 오셨으나, 높아진 마음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해서 불행하게도 타는 유황 불 못에 던져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 눈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높아진 마음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된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그 마지막은 유대인들처럼 타는 유황 불 못에 던져지고 말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자들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