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성령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거친반석 2018. 7. 15. 11:52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8:1-11

제목: 성령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야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고, 오늘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믿은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며 좋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유대인들과 똑같은 자가 되고 만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두고 율법의 저주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율법 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셨다. 그런 후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도록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셨다. 그런 후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하나님 아들)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마치, 유대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곧장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율법아래서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지금까지 사단의 발아래 살던 이방인들도 비로소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다면 이방인들 또한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법칙이다. 그런 후 마지막에 다시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하나님 아들)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령의 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인간을 온전케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꾸만 율법(성령의 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 만약 율법이나, 성령의 법으로 인간이 온전케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육체를 입은 예수께서 유대인들 앞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율법이나 성령의 법으로 인간을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셔야 하고,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야 하는 것이다.

 

육체를 입은 예수께서 유대인들 앞에 오셨던 것은,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다 보니, 예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왜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바리새인들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좋아하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왜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보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이런 경우를 두고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들어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3) 며 책망하신다.

 

이방 불신자가 전도를 받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이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기독교인 모두가 이런 사실을 모르다보니,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곧 구원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자신의 동족들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예수 믿을 것을 권유해보지만, 도리어 그러는 바울을 배신자라고 죽이려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다음 글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았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영적인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아야 공평한 것 아닌가? 그런 후에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로 말미암아 각각 구원에 이르는 것이 공평한 방법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이라고 말한다면, 2천년 동안 율법의 규례에 따라 온갖 것을 지켜가며 살았던 유대인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유대인들도 율법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더라면, 예수 믿기가 훨씬 더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다보니, 예수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같은 예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가 힘든 것은,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이 걸림돌로 작용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지 않은 불신자들은, 성령의 법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셨을 때, 현제의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믿기가 쉬울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면, 이제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도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방인들 모두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율법이나, 성령의 법을 거역한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아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자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자들일수록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예수를 배척한다는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다보니,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예수를 배척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자들일수록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교인들을 가르치는 목사들일수록 이런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보며, 그토록 그들을 비난하던 기독교 목사들이, 정작 자신들은 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다가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셨다면, 오늘날 불신자로 살다가 전도를 받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역시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 백성(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하나님 법아래 가두어 두신 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요 은혜이다. 그래서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서 자범죄(자신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원죄(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하게 하신 후 영생에 이르도록 하셨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아담이 지은 (원죄)”는 이미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이제 성령을 거역한 죄(자범죄))”만 해결 받으면 영생에 이르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각각 구원의 방법으로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 역시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만 알았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당시 기라성 같은 율법학자들이 즐비하였지만, 예수를 믿어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아는 것 같지만,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아직은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라서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가 없다. 오늘날 제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목사라도 또는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유대인의 구원을 가져다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속성과 구원의 깊이를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자이다. 그는 율법으로도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 신학교 출신이다. 그러던 자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180도로 변하자, 가장 먼저 자기 동족들에게 배신자라고 낙인찍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야 했다. 예수는 40에 하나 감한 태장을 한번 맞았지만, 바울은 그런 태장을 5번이나 맞았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핍박하던 자가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자기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저렇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같은 기독교인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낙인찍히지 않는다.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당연히 바울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모두가 똑같은 성령을 받고, 다 같이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따라서 아직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어떤 자가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180도로 변하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죽이려 할 것이다. 왜 예수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죽이려 하는가? 그 이유는 예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의 행사를 악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사들의 외식()을 지적하자, 그들은 자신의 숨은 죄악이 들통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목사, 장로, 신학자들의 외식()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그때 기독교 목사들 역시 자신의 숨은 죄악이 모두 들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죄악이 들어나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이단괴수라는 미명하에 죽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거짓이 들통 나, 그때까지 자신이 가르쳤던 수많은 교인들로부터 몰매를 맞아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가 전하는 말씀이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악한 자들의 말로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자들일수록, 그 열심히 도리어 예수를 잡아먹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2:17) 한 말이 응했다고 말씀하신다.

 

부디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이 걸어갔던 잘못된 길을 걷지 말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올 때, 자신의 잘못을 그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 역시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해놓고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죽도록 고생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