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의 증인!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사도행전9:1-22
제목: 예수 부활의 증인!
바울은 바리새인 출신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던 자이다. 그가 얼마나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핍박하던 자인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로 죽이고 말았다. 기세등등한 바울이 그날도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던 중, 정오의 빛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눈이 멀었다. 바울이 눈이 멀게 되었다는 말은 부활하신 예수가 영(빛)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셨다는 말이다. 눈이 멀게 된 바울이 예수께서 알려주신 대로 아나니아를 찾아가 안수를 받자, 성령을 받고 즉시 눈을 뜨게 되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행9:17).
열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믿은 자들이지만,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믿게 되었다. 만약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바울은 평생을 율법아래 살다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루아침에 지옥자식에서 하나님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바울처럼 강권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지옥 갈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고, 백성 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로 선택하여 그에게 은혜를 베푼 다음, 그를 믿고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 자녀로 택정하신다. 이에 뒷받침하는 말씀이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 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말2:15). 우리 생각 같아서는 바울 같은 자를 10명이나 스무 명쯤 보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믿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다시말해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를 택해서 세우신 후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자들을 그토록 핍박하던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예수께서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예수께서 바울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차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시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바울의 사역을 통해, 장차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역을 하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둠속에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지만,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라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니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바울을 선택하신 두 번째 이유는, 바울이 바리새파 출신으로 율법에 능통하다는 것이다. 열두제자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들이라, 바울만큼 율법에 능통하지 못하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연구하고 공부하던 자라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기록한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세상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열두 제자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들도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바울이 전하는 말씀 앞에 꼼짝 하지 못했다. 인간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직접 보지 못했어도, 성경에 기록된 것을 가지고 보았다고 말하면 속을 수 있다. 하지만, 영적인 존재(귀신)들은 절대 속지 않는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도 사람들보다 귀신들이 먼저 예수를 알아보고 괴로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9).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이론으로 알고 있을 뿐,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직접 보지도 하지 않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단 속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들은 절대 속지 않는다. 이에 따라 목사들이 강단에서 아무리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말해도 ‘죽은 영’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죽은 영’들이 목사들이 성경 말씀을 도적질해서 갖다 쓰고 있는 알고는 속에서 비웃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설교를 하고, 성도들을 가르쳐도 아무런 권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는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는 상태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되면, 그건 성경 말씀을 도적질 해다가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이 기록한 글을 성경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을 통해 하신 말씀이라도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은 반드시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바울이 기록한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라, 그 말씀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하니까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성령과 예수에 관한 책을 많이들 펴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펴낸 책을 아무리 읽어도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는 오직 당신의 아들에게만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와 똑같은 권세가 나타나려면 적어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셔야 한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다보니, 어떤 말을 해도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권세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압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생명이다. 생명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자리 잡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서도 생명이 싹트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을 통해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생명이 싹트지 않는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생명을 갖지 못한 자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설교를 해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성령을 받으면 마음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성령(율법)으로는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율법이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듯이, 성령(율법)또한 기독교인들의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믿고 나오는 자들 속에서 죄를 사해주시거나, 귀신을 쫓아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죄와 귀신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죄를 사해주시거나 귀신을 쫓아 주시는 말씀은 모두 같은 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외부에서 들어온 귀신은 쫓아줄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줄 수 없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잠시 쫓아낼 수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를 보고 귀신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병 고침을 받았다가도 죄 때문에 나중에 재발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주셨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천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은 성령의 은사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려 해도 귀신이 꼼짝도 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도 해결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법을 지키지 못한 자들을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기 위해 오셨는데, 만약 성령이 기독교인들의 죄를 해결해 주게 되면,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법아래 가두어 둘 수 있겠는가?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 아래 가두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에게 계속해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끝에 가서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사는 영적인 존재가 바로 ‘죽은 영’이다.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 마음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죄악을 먹고 사는 죽은 영은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에서 절대 떠나지 않는다. 이런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온갖 죄를 짓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존재를 우리 마음속에서 쫓아 주실 분은 오직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몰라도 영적인 존재(귀신)들이 먼저 알고 벌벌 떨게 된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도 당시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귀신들이 먼저 알고 벌벌 떠는 볼 수 있다. 귀신들이 예수를 보고 벌벌 떠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언젠가는 쫓겨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이 오면 정체를 드러내고 떠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악을 먹고 사는 귀신 또한 그리스도가 오시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떠나게 되어 있다. ‘죽은 영’들이 지금 하는 일은,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속이면서, 마음속에서는 온갖 죄를 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약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은 본인이 지은 죄(성령을 거역한 죄)때문에 심판을 거친 후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게 된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 것이다.
귀신도 인간의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하고, 인간들을 죄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는 자기 일을 하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인간의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하며,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자신의 일을 하게 된다. 귀신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기 싫었으면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였겠는가? 이렇게 사람 속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는 귀신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으니,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몰라도 귀신들은 벌써 알고 쫓겨나게 될까봐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별의별 핑계를 다 대며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은 영’이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사실을 모른 체,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을 듣고 기분 나쁘다며 혹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며 그리스도 곁을 떠나는 것이다. 이때 누가 가장 좋아할까? 당연히 ‘죽은 영’이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존재들이 우리를 비웃지 못하게 된다. 야고보서를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이 말은 귀신도 하나님이 한분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에서 떠나야 되니까 귀신도 벌벌 떤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말로만 믿고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귀신이 도리어 네 자신을 비웃게 될 것이란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아무리 성경 말씀을 전한들 사람들은 속을지 몰라도, 인간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은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리어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서울 가본 놈과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서울 안 가본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거짓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그만큼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은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죽은 영들은 벌벌 떨게 되어 있다. 언제든지 어둠은 빛 앞에서 쫓겨나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울을 가보지도 않고 가봤다고 우긴다면, 사람들은 그 말에 속을지 몰라도, 귀신들은 영적인 존재라 절대 속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단에서 그럴싸한 말을 하더라도 거짓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귀신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서울을 가보지도 않고 가봤다며 성도들을 속일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시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죽은 영’들이 힘을 잃고 떠나게 된다.
부활의 증인이란? 예수님의 부활만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어서 어둠속에서 방황 유리하는 영혼들까지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제 여러분도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읽고,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여러분 마음속에도 주의 영이 임하게 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행동했는데도, 여러분 마음속에 주의 영이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때는 이곳에서 했던 말씀 모두가 거짓이기 때문에 단호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속에 주의 영이 임하게 되거든 여러분도 부활의 증인이 되어서, 아직도 어둠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 가족들부터 구해야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