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죄를 깨닫기 위함이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12:1-11
제목: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죄를 깨닫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3-7).
바울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주심은 구원 받게 하심이라’ 말하지 않고, 왜 ‘각 사람에게 성령을 주심은 유익하게 함이라’말했을까? 그 이유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바울은 '구원'이라 말하지 않고 '유익'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이치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다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 되고 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이 '유익' 이라고 말했던 것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도록 몽학선생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방법은, 성령을 받은 자는 반드시 신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가령, 예수께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미워하면 살인 하는 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방인들 마음속에 미움이 들어있다 보니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 하는 죄와 같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들 마음속에 음란이라는 죄악이 들어있다 보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않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죄악(미움, 시기, 질투, 분노, 거짓, 음란, 도적, 탐욕 등등...)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지은 ‘자범죄’이다. 성령을 통해 이런 죄악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이방인들에게는 큰 유익이 아닐 수 없다. .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이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아갔으나, 성령을 받고 보니 이런 죄악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죄악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유익이다. 그 이유는 장차 이방인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인격적으로 오셨을 때,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지은 ‘자범죄’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어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이방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영적인 율법’ 아래 가두어 두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예수를 보내서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이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모르고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다 보니까 이방인들이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들도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다. 이는 마치, 율법사와 서기관들이 유대인들에게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가르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유대인들의 육체에다 주신 '율법'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주신 '영적인 율법'이나, 율법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할 뿐, 어느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율법)으로는 누구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구원에 이르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자기 의(義)만 쌓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
인간에게는 아담이 지은 '원죄' 와 각자가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가 있는데, 예수 피는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하고, 예수 살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하게 된다.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영생에 이르려면 반드시 예수 피와 예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만약 두 가지 죄악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해결 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인간이 맨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죄가 없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영(靈)은 마귀가 지배하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은 죽은 영(귀신)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게 되자, 그동안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던 마귀가 떠나게 되었고, 마귀가 떠난 그 자리에 성령이 오셔서 인간의 영(靈)을 다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따라서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방인들도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는 해결 받았기 때문에,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 만 해결 받으면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였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성경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라고 하는 말은 오직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을 살게 된다. 하지만, 유대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짓고 율법 아래 갇히게 된다. 그러던 것을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예수가 오셔서 자신을 믿고 나오는 자들에게서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해결해 주신다.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왔다고 해서 예수를 '율법의 완성자'라고 부른다.
예수를 믿고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은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되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유대인들의 영(靈)과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이로써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범죄’와 ‘원죄’를 모두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를 두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도 없이 살아가던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을 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죄는 본인이 성령(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라서,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유대인)들이 지은 ‘자범죄’만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는 오직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오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말씀은, 이삭의 예표로 예수가 유대인들 앞에 구세주로 오셨고,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야곱의 예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오셨다.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구세주이고,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구세주이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원리에 따라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인격적으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이다. 좋은 예로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가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던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으로 직접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사시게 되므로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않게 된다. 그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게 되니까 어떤 근심이나 걱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는 '죽은 영'이 떠나게 되니까 죽음의 공포 또한 사라지게 되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삶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바울이 바로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령’ 아래서는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서는 아무리 많은 것을 움켜쥐어도 앞날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돈, 명예, 권력 어떤 것도 자신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것은 잠시 왔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지옥으로 갈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다시 오셨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한 것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끝까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게 되면,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 생활 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신앙 생활 하였지만,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배척하고 믿지 않는 바람에 모두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죽을 힘을 다해 신앙 생활 하고도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죄악을 벗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