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는 반복 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10:1-13
제목: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 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살았다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이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하고 있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성령의 법(영적이 율법)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한다.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2천 년 동안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2천 년 동안 예배를 드리고 있다. 히브리서10: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듯이,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예배 또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매주 마다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살았지만, 짐승의 피와 살이 유대인들이 지은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하나님 법이기에 유대인 모두를 율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그래야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예수를 보내서 율법 아래 갇혀 있는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기에,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의 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의 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다.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되듯이, 오늘날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다 멸망으로 가고 말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으로 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되어 질 일들에 대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신 후,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나도 반드시 그 말씀을 이루어 가신다. 가령,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기한이 이를 때에 네게로 돌아오리라!”(창18:10) 말씀하셨다면, 수천 년이 지나도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좋은 예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나이 많아 경수가 끊어진 상태라서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90을 바라보던 사라가 이 말을 듣고 반신반의 하지만 말씀대로 이삭을 낳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이 있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로서 장차 나타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표하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은 장차 이스라엘 땅에 오실 예수를 예표 하고 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자녀인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면, 이삭에게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신다. 이는 곧 형 에서는 육신의 자녀로 장차 나타날 이방 기독교인들을 예표하고 있으며, 동생 야곱은 약속의 자녀로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이 또한 육신의 자녀로 태어난 기독교인들이 야곱의 예표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만 구세주를 보내주시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세주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유대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셨다면,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신다. 그래야 각각 하나님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만 장차 되어질 일들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도 장차 되어질 일들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사도 바울의 선택이다.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다 못해 잡아다 옥에 가두기까지 하던 자이다. 심지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처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바울을 선택하신 것은, 바울이 훌륭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바울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장차 이방인들 앞에 가서 하게 될 일을 미리 나타내고자 함이다.
만약 예수께서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방인들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시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의심 많은 이방인들로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불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의사 면허도 없는 자가 의사라고 말하면 누가 그를 신뢰하고 의사로 믿어주겠는가? 기독교인들의 그런 의혹을 불식시켜 주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장차 이방인들 앞에 가서 하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바울의 예표만 보여주신 것이 아니다. 신약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께서 장차 이방인들 앞에 가서 이루실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가령,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비유만 하더라도, 이는 장차 이방인들 마음속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직접 들어가지 않고, 예수께서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만 사해 주면 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직접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죄가 해결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씨 뿌리는 비유는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이방 기독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경은 유대인들을 여름 실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름 실과는 저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하듯이, 유대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 받은 자는 핍박을 받아 빨리 죽는 것이 복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죄(마귀)의 유혹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예수 믿고 성령까지 받은 자들이지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성령을 속이고 재산 얼마를 감추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두고 육신은 멸하고 영으로는 살게 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 수많은 사람들이 원형 경기장에 끌려나가 짐승의 밥이 되거나, 이교도들의 핍박을 받아 죽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믿는 것으로는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와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한다. 그래야 이방인들도 죄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성령)의 뜻대로 살게 된다. 바울처럼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신 자를 두고 알곡이라 부르는데, 결국 알곡들만 하늘나라 곡간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에 어리둥절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예표로 예수를 이스라엘 땅에 보내서, 하나님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해주셨다면, 야곱의 예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해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이미 마귀가 타락할 때부터 세운 계획이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아직 어느 누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들도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하나님 영이다. 예수도 성령을 아버지라고 마10:20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다. 따라서 성령과 그리스도는 각각 하시는 일도 다르고 또한 인간 속에 오시는 장소도 각각 다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물 건너 가고 만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즉시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자 '악한 영'이 즉시 그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삼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사단이 하수인이 되면 바리새인들처럼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 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울이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울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품속에 나오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의 비밀을 누구도 알 수 없다.
바울이 자신의 옛사람을 소개할 때, 자신은 가말리엘 출신으로 율법에 능통한 자요. 율법으로는 조금도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자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자, 그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고백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달라지게 하였을까? 이는 바로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가서 빛을 비추어 주시자 비로소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끔찍한 죄악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보게 되면 누구나 바울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자(죄인)로 낮아지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작은 소자(小子)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았을 뿐, 아직 어느 누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소경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성령이 자신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 줄도 모르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마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모습과 똑같은 상태에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옛 모습대로 살다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구약 성경이 유대인들에게 ‘율법’ 역할을 하고 있다면, 신약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2천 년 후, 예수가 오셔서 모두 이루어 주셨듯이, 신약 성경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2천 년 후,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두 이루어 가게 된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