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본문: 마태복음16:21-28
제목: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성경을 통해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서 아는 것일 뿐,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예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 부활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예수 부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기를 한번도 낳아보지 않은 여자가 엄마 노릇을 하는 것과 아기를 직접 낳아서 길러본 여자가 엄마 노릇을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아기에 대한 심정을 이해할까? 당연히 후자 쪽이다. 예수 부활도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부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아니!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만 알면 되는 것이지, 굳이 예수 부활을 몸으로 직접 체험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것과 바울처럼 예수 부활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과는 신앙 생활 자체가 다르다. 오늘날에도 예수 부활을 이론으로 아는 사람은 여전히 '죽은 영'에게 종 노릇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바울처럼 예수 부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자신을 이끌어 가게 되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의(義)나 자랑이 나올 수 없다.
세상 법정에서도 판사가 죄의 유무를 판단할 때, 범죄자로 붙잡혀 온 자가 죄를 지었다는 심증은 가지만, 죄를 지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선고되고 만다. 하물며 세상 법정도 이럴진대, 예수 부활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예수 부활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사도 바울처럼 반드시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주인으로 계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하고 있는 귀신(죄)이 인간을 죄에서 절대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열두 제자보다도 바울이 더 많은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가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열두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성경에 기록한 반면, 바울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인간의 영(靈)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인간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계셔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부활하신 예수가 계셔야 귀신(죄)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하는 말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귀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죽은 영'이 넣어주는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죄, 죽은 영, 귀신, 악한 영은 모두 동격으로 같은 말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영적인 존재로서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 제거 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마귀와 귀신은 인간 속에 내주 하는 장소도 다르고 또한 하는 일도 각각 다르다.
오늘날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이론으로 아는 것 만으로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론으로 아는 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 부활을 이론으로 아는 것은 마치, 모닥불을 쬐고 있는 것과 같아서 모닥불이 꺼지고 나면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자는, 꺼지지 않는 장작불과 같아서 절대 옛날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예수 부활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예수 부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 당시 사울은 틀림없이 율법으로 구원 받은 줄 알았다. 그러나 사울은 당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이라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죄인이다. 그런데 사울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순간! 귀신은 그런 자의 마음을 단번에 장악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게 만든다. 사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했던 이유가 바로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증거다.
당시 사울(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모두 다른 종교를 전파하는 이단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예수 믿는 자들 모두가 사울 눈에는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다 못해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의롭게 여겼던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를 통해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종교가 무서운 것은 악한 영이 넣어주는 거짓을 참 진리로 알고 받아들이게 되면, 악한 영이 그의 마음을 단번에 장악해 버리기 때문에 좀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사울이 만약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역시 지옥 불에 던져 지고 말았을 것이다.
바울의 회심 과정을 보면, 그날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중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된다. 당시 사울이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꿈이나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직접 사울 마음속에 내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그리스도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령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머리 위에 임하게 되나, 부활하신 예수는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이다.
예수의 밝은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된 사울이 당황해하자, 예수께서 다메섹으로 내려가 성령이 충만한 아나니아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아니니아를 찾아가 안수를 받자, 사울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자 사울 눈에서 비늘 같은 벗겨지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울은 성령도 받고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주 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후 바울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어떤 제자들보다도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다. 당시 사울이 예수를 핍박하고 못살게 굴던 자였지만, 예수께서 그를 이방인들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것을 미리 바울을 통해 예표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삭의 예표로 예수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고 계시듯이, 부활하신 예수 역시 바울의 예표를 통해 장차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지만,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게 되었다. 그런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이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이런 내용을 알 수가 없고,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알려주셔야만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모든 죄가 도말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 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믿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게 되므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간의 머리 위에 임하여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는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셔서 해결해 주셔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금식하며 회개해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를 해결해 주신다. 이를 두고 예수 부활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아직 어느 누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서두에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이론으로 아는 것과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바울 마음속에 직접 내주 하신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던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모습하고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을 믿기 싫겠지만, 믿기 싫어도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은 틀림없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자신은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