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본문: 로마서10:1-15
제목: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10:10-13).
바울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하는 말은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다 보니 자기 동족들에게 하는 말이다. 실지로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 대부분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이 많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인데, 유대인들이 이를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바람에 율법이 걸림돌이 되어 예수 믿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었다.
이런 일은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방인들에게 주신 성령은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다.
유대인과 달리 이방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는 겨우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아담이 지은 '원죄'와 더불어 인간이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까지 모두 해결 받아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현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았을 뿐,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자범죄)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이에 따라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반드시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만약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할 경우 모두가 '영적인 율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다 보니 누구도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영적인 율법 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2천 년을 살았다. 하지만,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 아래 갇히고 말았다. 율법을 거역하여 죄 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에 주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셨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사람들이라,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는 아담이 지은 ‘원죄’하나만 해결될 뿐, 마음속의 죄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율법 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해결 받게 된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게 되자, 아담이 지은 ‘원죄’가 해결 된다. 그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이 오셔서 유대인들의 영(靈)을 지배하게 되었다.
예수가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자, 제자들이 방문을 박차고 나가서 담대히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선포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성령이 제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담대함을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은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야만 인간들에게 오시게 된다. 이를 두고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 아니고 아버지의 영이다. 마10:20절을 보면 예수께서도 분명히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의 영(靈)은 마귀가 지배하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은 죽은 영(귀신)이 지배하게 되었다. 마귀와 귀신의 지배를 받고 살던 인간들 앞에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나게 되자, 그 자리에 성령이 오셔서 인간의 영(靈)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성령을 받은 과정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해서 받기 때문에 똑같다. 그러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는 과정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각각 다르다.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게 되고, 이방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으면, 유대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귀신(죽은 영)이 떠나게 된다. 예수께서 유대인들 마음속에서 귀신을 쫓아냈던 이유가 유대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귀신을 쫓아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죄를 사해 주시는 과정이다. 이를 두고 바울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왜 똑같은 예수를 믿었는데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만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하나를 해결 받게 된다. 그 증거로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가 해결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령을 받아도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악(미움, 시기, 질투, 음란, 거짓, 도적, 탐욕)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어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은 누가 해결해 주시는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해결해 주신다.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 하늘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시던 부활하신 예수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사건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는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믿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도가 도적같이 오시는 이유는 교만한 자들과 오만 불손한 자들은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도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 오셨던 이유가 교만한 자들과 오만 불손한 자들은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께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계속해서 감추셨던 이유가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은 믿게 하고, 교만한 자들은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크고 화려한 교회에 주님이 계실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예수를 믿지 못했던 이유가 자신의 교만함이 자신의 눈과 귀를 가려서 천국의 주인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반대로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든 자들과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던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를 믿고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예수를 믿지 않던 자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교만한 자들은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을 귀로 들으면서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영적인 소경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이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는 공중 재림에 앞서서 기독교인들 앞에 먼저 오신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먼저 오시는 이유는 성령을 거역하여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만약 기독교인들 말대로 부활하신 예수가 공중에 먼저 오시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아직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서 한 사람도 들림 받지 못하고 모두 낙오자가 되고 만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이 무척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처음 듣는 말씀이라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구원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구원의 비밀을 모르고 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구원의 비밀을 누구도 모르고 있다. 구원의 비밀은 오직 하나님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되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바울이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던 말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누구든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바꿔 불러야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