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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리라!

거친반석 2014. 1. 5. 15:07

본문: 사도행전28:23-28

제목: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리라!

 

바울은 율법주의자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하나님 아들’(人子)을 예표해 주시기 위해서다. 이방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人子)이란?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미리 선택하여 그를 통해서 ‘영’(말씀)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성령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 받은 것을,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하여 모두들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써,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 하나님 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법을 주신 것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 백성이 되어 성령의 법아래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곧장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 백성으로 율법아래서 약 2천년을 살았지만, 그들이 곧장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서야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백성이 되어 영적인 ‘율법’(성령)아래서 현제까지 약 2천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다. 따라서 현제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셨을 때,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 아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모두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킬 자가 없다. 유대인들은 육체의 연약함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율법아래 갇힌 죄인이 되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마음이 부패한고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성령의 법아래 갇힌 죄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이제 겨우 땅에서 ‘하나님 법’(성령)을 받은 것을 가지고 모두가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장차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실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율법아래 갇힌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가 육체를 입고 오셨듯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이방인들처럼 전도를 받아서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율법아래 태어나서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율법 아래서 약 2천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율법을 지켜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오히려 ‘자기 의’()만 쌓게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다. 율법아래 갇힌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은, 율법아래 갇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아들을 믿지 안했다. 특히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자들일수록 아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율법의 저주로 육체가 병든 자들은 예수를 찾아와서 믿었다. 예수를 믿었던 자들은 육신으로 지은 ‘자범죄’(율법을 거역 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원죄’를 사함 받았다. 그 증거로 성령을 받고 먼저 안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과정이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아래 태어난 하나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야 그나마 성령을 받고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 성령을 받게 되는 과정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백성은 먼저 하나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이 바로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성령의 법이 바로 ‘영적인 율법’이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 백성이 되어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성령을 따라 살기가 절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제는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이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이방인들이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한다.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은, 이방인 중에서 미리 선택한 한 사람을 통해서 오신다. 따라서 그의 겉모습만 봐서는 그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가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간들이 하는 말과 달리 ‘권세 있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권세 있는 말씀’으로 귀신들을 제압하고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셨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앞에 오신 하나님 아들 역시 ‘권세 있는 말씀’으로 귀신들을 제압하고,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셨듯이, 오늘날 이방인들에게 주신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의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무시하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다가 끝내 예수를 믿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죄를 깨달으라고 보내주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하나님이 보내준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아직 구원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구원 받았다고 말하게 되면, 바리새인들처럼 ‘거짓 영’(鬼神)에게 속게 되어 마귀의 손아귀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일수록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면, 교인들에게 십중팔구 세상 것을 가르치게 된다.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결국 자기 생각으로 교인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물어볼 것도 없이 사단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세에는 ‘주의 종’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지도자들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야보고 말대로라면, 오늘날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목사들이 가장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왜 목사들이 가장 큰 심판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바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육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서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목사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다음,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그리스도가 선생이 되어 교인들을 가르치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이 현제는 ‘성령’(율법)만 받았을 뿐, 아직 그리스도로 거듭난 적이 없다보니 육신의 생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큰 형벌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마태복음 23:11절에는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왜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는 온전케 되지 못하는가?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법을 주러 오셨기 때문이다.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을 따라 살면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목사 자신조차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면서 성도들에게는 성령을 따라 살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은 손가락 하다고 까딱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맨 날 율법을 따라 살 것은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들의 잘 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들 밑에서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 하던 자들이 모두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교만하고 높아져서, 이후로는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러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똑같이 그러고 있다. 거짓을 사실로 믿게 되면 ‘악귀’(惡鬼)가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인노릇을 하게 된다. 이런 ‘거짓 영’(鬼神)에 한번 붙들리게 되면, 제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악한 영’(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못 듣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이 강퍅해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6:9)” 이사야는 당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장차 유대인들 앞에 육체를 입고 오실 하나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가 오셔서 말씀을 들려주어도 너희가 깨닫지 못할 것이며, 예수를 너희가 직접 보고도 그를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이는 참으로 끔찍한 말씀이다.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보면 더욱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6:10)” 이는 마음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악한 영이 들어가도록 허용하여 마음을 둔하게 한 다음, 그 귀를 막고, 그 눈을 감기게 하여 전혀 듣도 보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사랑도 베푸시는 분이지만, 반대로 징계도 내리시는 분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멀리하며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주변 국가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려 보지만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이런 예언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통해서 사실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마음이 교만하고 강퍅한 자들은 정말로 예수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또한 하나님 아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그가 하나님 아들이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려고, 마음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을 사도 바울도 똑같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도 자신을 돌이키지 않는 것을 보고, 바울이 속이 터져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어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바울이 말한 그 예언은, 이제 곧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그것이 사실로 이루어 질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이사야가 예언했던 것처럼, “영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이 말씀을 전해줄 때,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눈으로 보아도 그가 하나님 아들이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이 모두 교만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이 교만하다는 말은,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말씀을 들려주시는데도 기독교인들이 좀처럼 그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기독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이 주일 성수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알려주는데도,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유대인들에게서도 나타났었다. 안식일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켜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인 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당시 어느 누구도 예수가 하는 말을 곧이듣지 안했다. 이는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으로 의로워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수없이 말씀을 들려주는데도 끝까지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마음에 ‘악한 영’을 허용하여 영원히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울 왕이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자,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악귀’(惡鬼)를 허용하여 그를 버렸다. 기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들이 와서 말씀을 들려주는데도,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자들에게는 ‘악귀’(惡鬼)를 허용하여 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혹시나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염려가 되어, 사전에 믿지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겠는가? 이는 눈멀고 귀먹은 장애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은 모두 다 알아들으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은 못 알아듣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것들은 모두 다 잘 보면서도, 그리스도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악한 영’(鬼神)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못 듣게 귀를 막았기 때문이며 또한 ‘악귀’(惡鬼)가 인간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에게 내리는 최고의 형벌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