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거친반석 2014. 1. 26. 13:48

본문: 히브리서10:1-18

제목: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첫 것으로 시작하여 둘째 것으로 끝난다. 첫 것으로 주신 것은 모형이요 둘째 것으로 주신 것은 실체이다.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이 있었으나, 장자인 가인이 버림을 당하고, 동생 아벨이 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아들 둘이 있었으나 장자인 이스마엘이 버림을 당하고, 동생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뱃속에 쌍둥이가 잉태 하였으나,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장자인 에서가 버림을 당하고, 동생 야곱이 선택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이 첫 것에 해당된다면, 복음은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한 둘째 것에 해당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서 시내산에 도착하여 율법을 받은 것이 첫 것에 해당된다면,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행위가 첫 것에 해당된다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사건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첫 것에 해당된다면, 예수의 몸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렇게 진행시키는 것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항상 첫 번째 것은 모형으로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다보니, 모두가 첫 것으로 주신 것을 실체로 믿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악한 영’이 인간을 속이고 모형으로 주신 것을 실체로 믿도록 속이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했던 일이다. 바리새인들이 실체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모형에 불과한 예루살렘 성전을 붙잡고 거기에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실체가 오시기 전에는 모형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체가 오시고 난 후에는 모형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어 폐기 되고 만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8:13)”

 

건설업자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모형을 먼저 지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살집이 이렇게 생겼습니다하고 광고를 하는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모형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보고 집을 사겠다고 계약을 한다.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모형으로 지어진 집은 필요치 않게 되어 부셔버린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로, 아들이 오시기 전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모형을 실체로 믿다보니, 진짜가 왔는데도 계속해서 모형만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과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 역시,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모형으로 주신 것들을 실체로 알고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고 하자,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독교인들에게 아무렇게나 살아도 예수께서 모든 죄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악한 영’의 꾐에 넘어가 모두가 ‘성령의 법’(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리하여 성령의 법을 어겨도 예수께서 모든 죄를 다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주신 성령은,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라고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를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여 구원받았다고 하고 있으니, 당연히 ‘악한 영’이 기독교인들을 속이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해결 받을 수 있는 죄는 아담이 지은 ‘원죄’뿐이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그동안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고 있던 마귀가 떠나자 ‘성령’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인간의 영(靈)만 마귀 발아래서 해결 받은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따라서 성령은 구원의 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 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제대로 따라 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죄악이 가득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을 ‘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어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거역하고 스스로 짓는 ‘자범죄’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자범죄’를 해결해 주러 오신 분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는 오직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해결 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산 영’이라 말할 때, ‘죽은 영’ 혹은 ‘악한 영’은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사는 영(鬼神)을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어도 무조건 예수께서 모든 죄를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악한 영’의 꾐에 빠져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도 ‘악한 영’의 꾐에 빠져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가 예수를 믿지 않아서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아직 인간이 구원 받지 못했는데,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런 원리로 오늘날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첫 것에 해당된다. 그리고 성령의 법을 완성시키러 오시는 ‘영적인 아들’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기독교인들의 예배 처소인 예배당이 첫 것에 해당된다면, 예수가 영으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오늘날 세상에 지어진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가 첫 것에 해당 된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속에 지어지는 ‘무형교회’가 둘째 것에 해당된다.

 

첫 것은 언제나 죄 아래 사는 것이고, 둘째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구약 성경이 첫 것으로 주신 ‘율법’이요. 신약 성경이 율법을 완성시키는 ‘복음’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약성경이 첫 것으로 주신 ‘영적인 율법’이요.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이 들려주시는 말씀이 ‘영적인 복음’이다. 신약성경을 제대로 따라 살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다. 자신이 신약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영적인 복음’을 들고 오시는 아들 앞에서 시인하게 되면, 모든 죄에서 자유케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첫 것으로 주신 모형을 붙잡고 구원이라고 하고 있다. 첫 것을 실체로 믿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100%로 악한 영에게 속아서, 둘째 것으로 오시는 실체를 믿지 못하게 된다. 지금도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다. 이는 바리새인들처럼 모두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8:7)”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자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앞에도 반드시 바울처럼 예수의 영을 받은 자가 오셔서 이런 사실들을 모두 알려주어야 한다. 유대인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예수께서 오셔서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려주어도 마음이 강퍅한 자들은 이런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 역시 조상들의 혈통만을 중요시 한 나머지 예수가 전해주는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첫 것으로 주신 것은 모형이요 둘째 것이 실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기독교인들 또한 모형으로 주신 것들을 실체로 믿고 있다.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충분히 알았을 텐데, 정작 자신들에게 적용할 때는, 첫 것으로 주신 것들을 실체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모형을 실체로 믿게 되면 설사, 예수의 영을 받은 자가 와서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 해도,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미 ‘악한 영’이 그들을 속이고 구원받았다고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불교나 혹은 이슬람 사람들은 석가나 마호멧이 영생을 준다고 믿고 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그들에게 계속해서 석가나 마호멧이 영생을 줄 것이라고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두고 신념에 의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믿으려면 인간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서 ‘죽은 영’이 떠나지 않는 한, 인간의 고정관념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죽은 영’이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도 성령이 계신 줄 알고 있겠지만,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는 분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가 영으로 오셔야 하는데, 현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 대신 ‘죽은 영’이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는 한 ‘죽은 영’은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제 겨우 ‘영적인 율법’(성령)을 받은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고 믿게 되면, ‘죽은 영’이 인간을 속이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을 실체로 믿도록 유혹을 역사해서 구원 받았다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던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원리 때문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죽은 영’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해를 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결국 ‘죽은 영’이 자기 마음속에서 속삭여대는 바람에 예수를 믿지 못하고, 그만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당시 바리새인들을 지배하고 있던 ‘악한 영’은 예수를 이단괴수로 몰아 죽이는 대까지 함께 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삶을 보면서 적어도 유대인들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모형으로 주신 것들을 실체로 믿고 있다. 이를 되돌리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악한 영’에게 속아서 믿는 것이지만, 이 글을 보는 기독교인들은 이제부터라도 모형으로 주신 것들을 뒤로 하고, 실체로 오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마음속의 죄’ 해결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