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15:1-20
제목: 마음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를 책잡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는 이때다 싶어 예수께서 나아와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당신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더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遺傳)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며 그들을 심하게 질책하신다. 여기서 유전(遺傳)이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유대인들의 전통으로 그들은 조상들이 전해준 전통을 더 신봉하였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교훈으로 바꾸어서 가르치기 일쑤였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 또한 하나님의 본질을 외면한 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여 교인들을 가르치거나 또는 인간이 만든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렇지만 당시 유대인들도 겉만 깨끗이 하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하여 부정한 것들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인지 금방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그런 것들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부정한 것을 만지고 먹으면 사람이 더럽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외에가 아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고 무조건 교회 나가서 예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보시고 외식(外飾)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다. 유대인들이 이런 삶을 살게 된 배경에는 율법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렇다할지라도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다면, 적어도 이토록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을 지키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목적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겉으로는 거룩을 부르짖었으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 있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자들을 두고 이사야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는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속사람을 변화 시키러 오신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외식(外飾)을 책망하시면서, 밖을 깨끗이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을 청결히 할 것을 말씀하신다. 겉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며놓아도 속이 더러우면 모든 것이 더럽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것을 보시고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하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런 지적을 하신 것은, 유대인들의 어느 한부분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죄악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죄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다 마음이 부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육체에 준 율법 몇 가지를 지켰다하여 자신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이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다. 아직도 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노략질 하는 이리떼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율법 몇 가지 지킨 것을 가지고 자신을 의롭다고 하고 있으니 그 뒷감당이 어찌되겠는가? 예수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을 두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심하게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믿고 있다. 기독교인들 말대로 예수를 믿고 성령 받은 것으로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하나님 백성으로 2천년을 살고도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어야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데 비해서,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도 아닌데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렀다하여 그것으로 모든 죄가 도말되어 곧장 천국에 들어간다면 유대인들과 비교해서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의 구원은 힘들게 해놓고 이방인들의 구원은 쉽게 해놓는다면 아마도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떨어진 유대인들의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 절대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을 율법아래서 하나님 백성으로 약2천년 동안 살게 하신 다음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셨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2천년 살게 하신 다음 마지막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성이다. 이렇게 해야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구원 과정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서부터 인간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는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고민거리라고 해봐야 로마를 어떻게 물리치느냐 하는 것이 고민의 전부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사생활을 직접 간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로마는 적어도 자신들의 신앙생활만은 참견하지 않았는데, 예수는 사사건건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책망하고 다니는 것이다. 사실 예수는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다니는 것이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며, 힘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일수록 예수께서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오셨을 때, 과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어떻게 맞이할까?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달려가 예수를 얼싸 않으며 춤이라도 추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스라엘 예에서 보았듯이, 예수가 인간들 앞에 오시게 되면 믿는 자들이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예수와 실제로 오신 메시아의 행동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풀려나게 해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메시아가 오셔서 로마군을 물리치기는커녕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다니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이런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하고 다니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죄인의 신분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그것으로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적어도 자신의 마음속에 죄가 없어야 하고 반드시 ‘그리스도 영’이 계셔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기독교인들은 절대 세상과 짝하며 살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보면 누구 하나 세상과 짝하며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믿는 자가 세상과 짝하며 살고 있다는 말은 그들 마음속에 세상 영(죽은 영)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 역시 사람이 만든 유전(기독교 교리)를 따라 배우다보니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가르치던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사단의 속성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고 하셨다.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소경의 테두리를 벗어난 자들이 아니다. 그러니 저들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가르칠 선생은 오직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선생이 되어 가르칠 때만이 인간이 어두움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 앞에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오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지적하게 된다. 이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귀신)들을 제거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들 앞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기독교인들의 죄악을 먼저 지적하시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기독교인들로서는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 아들에게 화를 내며, 왜 자신들을 책망하며 죄인으로 몰아가느냐며 도리어 하나님 아들에게 역성을 내며 죽이려고 덤비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신들 앞에 오시면 좋을 줄로만 알았던 기독교인들 역시 정작 그리스도가 오시자 슬슬 피하거나 대적하는 자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먼저는 검을 주러왔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그리스도의 무늬로 잘 꾸미고 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 사람일수록 또는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의 외모는 잘도 꾸며져 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냈던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던 자들이 점점 더 회칠한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보며 훌륭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자들 마음속에도 음흉한 이리떼가 숨어 있음을 누가 알랴! 오늘날 조상대대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목사라도 또는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더 나아가 자기 몸을 불사름에 내어줄지라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은 결코 기독교의 신앙생활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신 분은 오직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오늘날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오늘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우려 들어보시라! 그리하여 자기 마음속에 단 한 가지라도 이런 죄악들이 있거든 자신이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하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9-20) 이런 죄악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꿈틀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원 받았다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당당하게 부르고 있다. 그러나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죄인은 하나님을 보는 즉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보자로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주신 것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던 기독교인들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오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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