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말씀
본문: 시편2:1-12
제목: 내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을 지키도록 말씀하셨다. 그러나 죄 아래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을 구원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들이 율법으로 자기 죄를 깨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아래 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모두 똑같이 그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유대인들이 받은 성령과 다른 의미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당장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살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의 살(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음)과 예수의 피(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음)를 마심으로써,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도 없이 개, 돼지(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주어먹고, 돼지는 자기가 싼 똥 위에 도로가서 눕는다)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사람들이라,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당장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하여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비로소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현재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인간 스스로 지은 “자범죄”까지 모두 해결 받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靈(영)과 魂(혼)과 肉(육)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인간의 靈(영)과 魂(혼)만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가고, 인간의 육은 흙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靈(영)이 죄에서 구원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흠 없는 피가 필요하고, 인간의 魂(혼)이 죄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의 죄 없는 살이 필요하다. 이런 원리에 따라 유대인들도 예수 살과 예수 피를 마심으로써 “자범죄(혼)와 원죄(영)”를 모두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영(靈)만 죄에서 구원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도 영(靈)과 혼(魂)이 모두 죄 사함을 받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비로소 기독교인들의 혼(魂)이 죄에서 구원 받아 온전케 된다.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가 모두 해결 되었다는 말이다.
아담이 지은 “원죄”와 달리 “자범죄”는 인간 스스로 지은 죄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가 바로 “자범죄”에 속한다. 이 “자범죄” 즉,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를 해결 받기 전에는 기독교인들 어느 누구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성령의 법아래서 해오던 신앙생활로는 이 죄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죄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라온 것이라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아는 그동안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충성봉사를 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주었더라도 마음속의 죄(자아)는 절대 해결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큰 교회를 운명하던 목사라도 또는 성령이 아무리 충만한 자라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결코 해결 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고 남의 것을 토색하지 않고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는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예나 지금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해결 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처음 신앙생활 시작할 때는 성령이 그렇게 충만하던 자라도 끝에 가서 타락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육신의 소욕)와 싸워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끝에 가서 타락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죄와 싸워 이길 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귀신)대로 가지 않고, 그리스도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 역할만 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법 아래서는 인간이 죄에 넘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점점 갈수록 타락하여 세상과 짝하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아)와 싸워 졌기 때문에, 사단(귀신)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그런 기독교인들을 보며 자신들과 비교해 봐도 별반 나아보일 것이 없는 것을 알고서는 개독교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큰 교회나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모두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의 종교적인 신앙생활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런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질 것 같았으면 굳이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도 “깨어 있어라 내가 도적같이 가리라!”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오시기도 전에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오시기도 전에 의롭다고 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나 보다 먼저 온 자는 다 강도요 절도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예수께서는 이방인 중에서 몇 사람을 선택하여 벌써 사역을 시작하고 계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영적인 율법(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다. 이제는 배척하는 정도가 아니다. 문전박대 하는 일은 예사고, 이단이라며 아예 말도 못 붙이게 하고 있다. “ㅇㅇ님! 성령을 거역한 죄인입니다”라고 말을 해주는데도 끝까지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바로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과연 이단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고 말해주고 다니던가?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귀신들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말(성령을 거역한 죄)을 하고 다니겠는가?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어떤 이단들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런 말씀을 해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거짓목사와 삯꾼목사들에게 세뇌되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만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활하여 도적같이 오신 예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이 말씀을 알아 듣고 나오는 자가 없다.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혼(魂)은 죄에서 구원 받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에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왜 너희는 내가 보낸 아들을 무시하고 믿지 안했느냐?”에 대한 심판이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내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창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그런 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줄거워 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2:7-12).
이 말씀은 1차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2차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실지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통해서 모두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에게서 다시한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문 말씀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지 않아 그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루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경우, 본문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철창으로 질그릇을 깨뜨림 같이 저희들을 산산조각 내실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하나님 아들에게 입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환란이 닥쳤을 때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 보면 환란 날에는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더 낮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죽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그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우리가 어떤 질병으로 인해 숨이 막히고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 차리라 죽는 것이 더 낮겠다는 생각을 한번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에게 끌려가서 약600만 명이 가스실에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히틀러 손에 붙였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당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아무리 성령을 받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지만,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을 믿지 않게 될 경우, 이보다 더 큰 환란과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율법을 어긴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지 않아 살아남지 못했는데, 은혜의 성령을 짓밟은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하겠는가?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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