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라!

거친반석 2017. 10. 4. 12:45

추석 특별 말씀

본문: 마태복음13:1-9

제목: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라!

 

오늘은 추석명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갈 것이다. 이때 믿지 않던 불신자를 전도하여 그가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도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신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때부터 그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현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란?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아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두기 위해서다. 그래야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그것을 살아생전에 해결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갈 무렵에 또다시 당신의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는 것이다. 기독교 목사들도 성령을 거역한 죄는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죄를 해결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으면 그것으로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게 되지만, 성령을 받고 현제 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현제 하늘 보좌에 계시는데 어떻게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사도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 사람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서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다시 오시는 것이다. 성경에 깨어 있으라 내가 도적같이 다시 가리라!”하신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 기독교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그를 하나님 아들로 알아보고 믿을 수 있는가?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통해 도적같이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주님을 믿을 수 있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기 눈앞에서 말씀하셔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 마음속에 도달하기도 전에 새(사단)가 와서 주워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로 자신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가말리엘 신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학문과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했던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신학교에서 배운 학문까지도 모두 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했던 모든 것들도 모두다 배설물로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도적같이 와서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의 고정관념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깨뜨려야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떨쳐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 자신의 고정관념(죄악)을 떨쳐내지 않고도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자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열심을 내던 자인지 심지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후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잘못을 알려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비로소 알게 되리라! 그러기 전에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 속에 꽉 붙들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무슨 수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잘못을 지적받은 사람은 그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들어가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은가? 옳지 않은 가를 먼저 판단해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들고 즉시 주님 앞으로 달려 나가서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동시에 떨어져나가게 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곧 성화의 과정이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 죄를 시인하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서 죄악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주님 말씀이 그전보다 훨씬 더 잘 들리게 되는 것이다. 죄악이 떨어져 나가는 만큼 믿음도 함께 자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장 쉬게 믿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겠다며 아무리 허공에 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불러도 주님은 결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어떻게 자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서 자라게 되는가를 마태복음13장에서 자세히 말씀하시고 있다. 여기서 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자신을 나타내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밭은 인간의 마음속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말씀)을 즉시 주워 먹어 버리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말씀의 씨가 돌밭에 뿌려졌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기는 하는데 돌밭이라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닥치면 견디지 못하고 곧 넘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밭은 가시덤불 속에 말씀의 씨가 떨어졌는데, 세상의 염려와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결실치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서, 작은 겨자씨로 오신 예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서,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이방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셔서 이루실 말씀들을 미리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점점 자라게 되는 과정을 두고 성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것을 두고 성화 되어 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자라지 않는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인데 어떻게 성령 하나님을 자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 했을 때, 죄로 인해 인간 곁을 떠났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서 마귀가 심판을 받고 인간 곁을 떠나게 되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인간 곁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이때 아담이 범죄 한 원죄도 해결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한번 성령을 받은 자는 영원히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어떤 자가 교회 다니다 그만 두고, 세상을 쫓아 살지라도 그의 신분은 하나님 백성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자녀는 신분상에 있어서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사는 죄인들이고(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됨), 하나님 자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양자의 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은 하나님 자녀들만 들어가게 된다. 죄인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 백성들이지만, 그들 역시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아직은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기 때문에 이대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양자의 영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오늘날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하다. 그 증거로 인간은 누구나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 거짓, 탐욕 등등을 마음속에 담아 살고 있다. 이런 죄악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운 영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이다. 똥이 많은 곳에 똥파리가 모여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이라도 불신자와 마음은 똑같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더러운 영들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점점 더 악해지는 지는 것이다. 60~70년대와 비교해보면 요즘 얼마나 인간들이 잔인해져 가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믿는 자들 역시 불신자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악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기독교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들에게서 이걸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들 마음속에서 이런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셔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런 더러운 영들이 인간의 마음속을 이미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위해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이런 더러운 영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온갖 의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더러운 영들이 방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영들이 설치는 인간의 마음속에 작은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는 너무 연약하여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곧바로 유산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성령을 거역한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게 되면, 그만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점점 자라게 되면, 인간의 어두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비추게 되므로, 그때까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던 악한 영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하나둘씩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점점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듣고 깨달으라!-

 

참고로 추석날 추도식을 드려야 한다며 가족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가 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예수로 둔갑한 악한 영에게 속아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지, 결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이 죽은 자를 위해서 예배한다고 하는 것인가? 이는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핑계를 대고 죽은 조상(귀신)을 기리려는 마음에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은 조상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죽은 조상(귀신)들을 달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