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13:31-33
제목: 작은 겨자씨로 사람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도!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신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법이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으로서, 성령을 받기 전에는 자기 뜻(마귀가 넣어주는 생각)대로 살았지만,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는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 가운데 태어나다보니, 누구나 마음속에는 죄악의 본질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 죄악은 성령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귀신)’이다. 똥파리가 똥을 먹고 살 듯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 또한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산다. 예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귀신들을 불러낼 때마다 “더러운 귀신아 거기서 나오너라!”고 말했던 것은, 귀신이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사는 더러운 존재라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계속해서 자기 뜻대로 살거나 또는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되므로,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기독교인들이 살아생전에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를 심판 받는 것이다. 불신자는 예수를 믿지 않아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곧장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지만,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라서,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죄의 결과에 따라 지옥형벌을 받게 된다.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누구나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이 인간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도 처음에는 뜨겁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은, 바로 ‘죽은 영’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아도 인간의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는 한 ‘죽은 영’은 결코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죄)가 떠나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모두 소멸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야 하겠지만, 성령을 받아도 '죽은 영'이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다. 그렇게 때문에 성령을 받아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와 더불어 ‘죽은 영’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그전까지 인간의 주인노릇을 하던 ‘죽은 영’을 몰아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인간 속에 내주하시는 장소가 각각 다르시다. 성령은 인간의 영(靈, 머리)에 해당되는 지성소에 내주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혼(魂, 마음)속에 해당되는 성소에 내주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 지성소, 성소, 마당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모두 인간의 영(靈), 혼(魂), 육(肉)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도록 하신 것이다.
지성소에는 법궤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는데, 법궤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법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며, 만나는 인간들에게 일용할 양식(말씀)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성소에는 일곱 금촛대와 떡상과 향로가 놓여 있는데, 일곱 금촛대는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질 완전한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있으며, 금촛대는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를 척결해주시겠다는 뜻이며, 떡상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향로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해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이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그렇다. 조금만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교회 목사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종들은 하나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고 있다며 책망하신다. 성령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유대인들도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았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도 유대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셨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시기 때문에 그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오시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죄 사함을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하루 빨리 보내 달라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어둠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이런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유대인의 경우를 살펴보자!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이유가 무엇인가? 실상은 그들도 하루 빨리 예수를 자신들 앞에 보내달라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예수가 오셔야 자신들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던 것과 똑같은 이치다.
당시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드렸던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의 모형이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역시 장차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모형을 붙들고 신앙생활 한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 어찌되겠는가? 구원은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 모형아래서는 아무리 그 이름을 불러도 결코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유대인들은 육적인 백성들이라 율법을 육체에다 주시고 그것을 따라 살도록 하셨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라 영적인 율법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주시고, 성령을 따라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가 들어있다 보니,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독교인 모두를 영적인 율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 모두를 영적인 율법 아래 가두어 놓은 이유는,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을 거역한 자들은 율법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유대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육체를 입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은 죄에서 구원해 주시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 이유 또한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백성으로서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되고, 마지막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게 되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하나님 백성도 아니고,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사람들이라,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유대인들처럼 곧장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여기서 잠깐 ‘자범죄’와 ‘원죄’를 설명하고 넘어가자! 자신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자범죄’라 부르고, 인간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원죄’라 부른다. ‘자범죄’는 우리가 마음속으로 지은 죄이고, 원죄는 인간의 조상 아담이 지은 죄이다. 이걸 해결 받기 위해서는 예수 피와 예수 살을 모두 먹어야 한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할 것 없이 이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구원이 완성된다. 다시 말해 한 가지 죄만 해결 받아서는 반쪽짜리 구원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현제 예수 피를 마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만 해결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반쪽짜리 구원만 받은 상태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예수 피를 통해서 해결 받아야 하고, 내가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는 예수를 통해서 해결 받아야 한다.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육체가 병든 자들)들이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게 되면, 병든 몸이 즉시 나앗던 것은 바로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이다. 그런 다음 예수 피를 통해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는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돌아오셔서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로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사람들이라,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합법적인 방법으로 구원을 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피 흘림을 통해 먼저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셨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도저히 성령의 따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데, 성경을 보니까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니까,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 받은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직도 죄 아래 살고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기독교인들은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오셨지만,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단에게 속아서 곧 죽어도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유대교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약속대로 예수께서 오셨지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던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처음 성령을 받게 되면 뜨겁게 느끼는 것은, 성령이 바로 하나님 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임재를 불로 나타내고 있다. 구약을 보면 모세가 불타고 있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내기를 해서 이겼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를 태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불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처음 성령을 받게 되면 뜨겁게 느끼는 것이다.
불신자가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곧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율법에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첫 단계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각자가 첫 시작을 하는 단계이다. 그런 후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자마자 구원 받은 것이라고 말하면 어찌되겠는가? 그러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성령과 달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빛(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내주하신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빛(영)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 그리스도는 작은 겨자씨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통해 도적같이 오시는 이유는, 교만하고 높아진 자들을 못 믿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에도 자신이 하나님 아들임을 누구도 알아볼 수 없도록 오셨다. 그 이유 역시 교만하고 높아진 자들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 영을 마음속에 모신 자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도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실수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 밭에 모시려면 마음 밭이 좋아야 한다. 작은 겨자씨가 인간의 마음 밭에 심기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 밭이 좋아야 한다. 마음 밭이 좋지 못하면 겨자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간에서 그만 타죽고 만다. 이는 마치, 난자와 정자가 만나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같다. 여자가 임신하고 몇 개월 동안은 음식을 가려가며 대단히 조심해야 되듯이, 그리스도 말씀을 듣고 작은 겨자씨가 본인 마음 밭에 심기어 진자는 적어도 몇 개월 동안은 일체 다른 음식은 배제하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들려주는 말씀만 먹어야 한다. 그래야 겨자씨가 유산되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안착할 수 있게 된다.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겨자씨로 심기어져서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겨자씨가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면, 그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된 다음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두고 성화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성화되어 간다고 말하는데, 성령 아래서는 성화가 일어날 수 없다. 성령으로 성화되어 간다는 말은 하나님이 점점 자라고 있다는 말인데,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대로 계시는 분이지 결코 자라는 분이 아니다. 그래도 못 믿겠다는 분은 성령 아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던 자신의 속사람을 살펴보시라! 자신이 성령을 받고 속사람이 하나라도 변화 된 것이 있는 가 살펴보라! 겉은 약간 변했을지도 몰라도 속사람은 그대로 있지 않던가? 죄악도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고 말이다.
오늘날 제아무리 큰 교회를 운영하던 목사라도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성령으로 겉 사람은 조금 변했을지 몰라도 속사람은 옛날 그대로이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다보니, 오늘날 기독교가 걷잡을 수 없이 타락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속으로 억누르고 참아왔던 것들이 마지막 때가 되니까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불신자들이 개독교라 부르고 있다. 타락한 기독교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이 시궁창에서 나뒹굴고 있다. 이제는 교회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들어도 신실한 자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기독교가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다.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갖다 붓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죄와 더불어 ‘죽은 영’을 몰아내고 새로운 주인으로 좌정하시게 된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셔야 속사람이 변화되고,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진정한 성화가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두고 당신의 자녀라 일컫는다. 공의가 사라지고 불법과 불의가 판치는 때는 세상 마지막 때요. 마지막 때는 만물들도 하나님 아들들이 나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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