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15:1-16
제목: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그리고 아버지를 농부로 표현하신 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취지는 이렇다. 농부가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잘라내 버리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더욱더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
예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유대인들에게 설명하려고 했던 이유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모두가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율법으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도리어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짓고 율법아래 갇혀 있기 때문에, 자신을 통해서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런 비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유대인들은 오직 율법으로만 의롭게 되려 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한번 잘못 박힌 고정관념은 바꾸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악한 영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을 속여 온 자이다. 그가 하와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하나님이 선악과를 못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하와가 방금 전까지 먹으면 죽는 것으로 보였던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와가 마귀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그것을 주어 먹게 하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인간 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발가벗고 살아도 전혀 창피한 줄 몰랐는데,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자 자신들이 발가벗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하와가 그것을 보고 자신들 눈이 밝아진 것으로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마귀와 귀신은 오늘날도 이런 식으로 인간들을 속이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감쪽같이 속였던 마귀가 유대인들을 교묘하게 속였다. 가령, 율법의 중한 법을 어긴 자는 육체가 병이 드는 반면, 율법의 중한 법을 어기지 않으면 자들은 육체가 병들지 않았다. 그때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이, 육체가 병든 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며 상종도 않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기준을 세울 때,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상대적 평가를 하기 때문에, 육체가 병든 자는 죄인, 그렇지 않은 자는 의인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육체가 병든 자나,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나,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난 자들이라서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가 사단의 하수인으로 태어난 죄인들이다. 생각해 보라! 613가지나 되는 법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1년 365일 10년, 20년 죽을 때까지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육체가 병든 것과 병들지 않는 것을 가지고 죄인(罪人)과 의인(義人)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깨닫게 하실 목적으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많은 설명을 곁들어 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오직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만 고집할 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과 육체가 병든 자들이 고침 받기 위해 예수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거역한 죄까지 사함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성령을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구원과정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구원은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신약성경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 역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 이방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본문 말씀을 자신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포도나무 비유 또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을 하나님 아들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예수님처럼 포도나무라면,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선한 열매는 고사하고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 악한 열매만 맺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열매란? 예수님처럼 자신을 죽여서 남을 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에게 무엇을 베풀 때 아무 댓가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을 보면,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일단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다. 댓가가 주어지지 않는데, 인간이 무슨 재미로 하겠는가?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나서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이라도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선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정말 하나님 아들이라면, 예수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라도 상대방의 영혼을 구해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을 구해내기는커녕 도리어 짓밟고 죽이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데, 왜 예수처럼 그런 선한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독교인들은 아직 하나님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들은 오직 예수 한분뿐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자동으로 하나님 아들이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믿고 성령만 받아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래 내용을 보시라!
이방인들이 하나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첫째, 하나님도 모르고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의 영(靈)이 마귀 발아래서 나오게 된다. 예수 피로 마귀를 멸하게 되자,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가 해결 된 것이다. 아담이 지은 원죄가 해결 되자,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성령으로 인간 곁으로 다시 돌아오시게 된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으로 영생에 이를 수는 없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이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세상 법을 버리고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성령의 뜻이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다.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이 방해를 하기 때문에,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지만, 예수처럼 선한 것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 댓가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나서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모두가 악한 영의 특성을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악한 것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 앉아있는데,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다. 따라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럼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와 더불어 죄를 짓게 하던 악한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이런 자를 두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 아들들이다.
하나님 아들이 되기 위한 두 번째 과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 본문 말씀도 하나님 아들 입장에서 보게 되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권세도 그대로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된다.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셔야, 우리 또한 예수처럼 선한 행동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우리 마음속에 계시지 않으면 천하 없는 어떤 자라도 마귀와 더불어 악한 영의 꾐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 온전케 될 것 같으면 예수께서 뭣 하러 또다시 오시겠는가? 기독교인들이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니까 예수께서 영으로 또다시 오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다보니, 선한 행동보다는 악한 행동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이를 본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로 보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참 포도나무가 되어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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