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로마서 8:1-11
제목: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나 비판을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심지어 세상 임금인 마귀나, 인간들을 죄 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가는 귀신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와 살을 찢어 죽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 모두가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누구나 예수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럼 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인가? 이방인들은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이런 자를 두고 마귀나 세상이 정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다음,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은 자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했어도, 마지막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런자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마귀가 날마다 하나님께 참소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죄를 짓는 자를 하나님께 날마다 일러 바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죄를 짓는 자를 자신들 손에 넘겨 달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마귀가 참소한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인간이 죄를 짓게 되면 계속해서 마귀가 하나님께 참소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죄짓는 자를 하나님께 일러바치는 것이다. 마귀가 인간을 하나님께 참소하는 이유는, 죄 짓는 자를 하루 빨리 자기들 손에 넘겨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신데 왜 죄 짓는 자를 가만 놓아두냐?'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 어쩔 수 없이 죄 짓는 자를 마귀 손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 짓는 자를 계속해서 방치할 경우, 하나님으로서의 본분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들 세계의 위계질서는 깨지고 말게 된다. 영들 세계의 위계질서가 깨지게 되면, 그때는 마귀들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도 인간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위계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죄 짓는 자를 마귀 손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내서, 인간을 고통속에 빠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에 따라 마귀는 인간들이 하는 일을 망하게도 하고, 인간의 소유물을 빼앗기도 하고, 인간에게 병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심지어 인간을 죽이기까지 한다.
욥기서를 보면, 마귀가 욥을 하나님께 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러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기1:6-12). 이때부터 사단은 욥의 소유물을 모두 빼앗고, 욥의 자녀들을 모두 죽였으며, 욥의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마귀와 귀신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라,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은 계속되고 있다.
바울도 사단의 이런 계략을 알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을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본래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바리새인이었으나, 예수께서 그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였다. 예수께서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를 삼았던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가? 그것은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라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의 죄를 사해주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마치,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이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셨던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예수께서 바울을 통해 보여주셨던 그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물(그리스도)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으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로는, 예수도 하나님처럼 영(靈)으로 계시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처음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예수께서 부활하여 영으로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는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때도, 이와 같이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바울을 통해 예표로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만 보지 말고,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오셔서 어떤 사역을 하게 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바울을 단순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장차 이방인들에게 이루어질 구원과정을 미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강렬한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자, 예수께서 아나니아 제자를 찾아가라고 알려주시자, 사울이 그를 찾아가 안수를 받자 사울에게 즉시 성령이 임하게 되었고, 그때 성령을 받은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앞을 보게 되었다.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행전9:17). 그러니까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울 마음속에 먼저 들어가셨고, 나중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다.
이렇게 바울처럼 성령도 받고, 그리스도 영도 받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바울은 이런 자를 두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마귀나 귀신이라도 다시는 죄로 참소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죄로 죽어야 할 인간을 대신해서 예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흘려 죽어주셨기 때문이다. 참고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아담이 지은 '원죄'와 본인이 지은 '자범죄'를 모두 사함 받은 자이다.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울처럼 물(그리스도)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일까? 다시 말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일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기독교인들은 아직 물(그리스도)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쁘겠지만, 기분 나쁜 그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실이 아닌 것을 알려주는데 기분이 나쁜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이 기분이 나뿐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분 나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속에서 누가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를 점검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미움과 시기와 분노와 탐욕이 가득하다면 여러분들 마음속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자 또한 세상에 속한 자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고,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생각하겠지만, 성령과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사람 속에 거하는 장소도 각각 다르고 또한 하시는 일도 각각 다르시다. 성령은 인간의 영(靈)속에 오셔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시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주시고,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아들은 율법을 거역한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하시는 일이 이렇게 각각 다른데 어찌하여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이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사는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핏줄에 같은 성(性)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그러나 각각의 위치가 다르고 하는 일도 각각 다르다. 마찬가지로 성령과 그리스도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죄가 없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분으로 볼 수 있지만, 아버지가 하시는 일과 아들이 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이를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취급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은 ‘악한 영’들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악한 영들이 거짓 목사들을 사용하여 교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 목사들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좋은 예로, 기독교 목사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목회를 하고 있지만, 사도들이나 바울처럼 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기독교 목사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유대인)들이 지은 '자범죄'만 해결하여 주시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해결하여 주셔야 한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가 구세주로 오신 것이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오신 것이다.
그럼 기독교 목사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불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전부다. 전도를해서 불신자가 예수 믿겠다고 고백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누구에게나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신다. 불신자가 성령을 받으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 백성(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이때 기독교 목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다보니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심지어 목사 자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여 마지막에는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때 하나님이 세운 신실한 목사라면,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을 거역한 죄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셔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가 있다. 그런데 목사들이 교인들을 성령을 거역한 죄인으로 만들기는커녕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유대인들을 모두 율법을 거역한 죄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거짓 선생들이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만들어 놓다보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쉽게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님 입장에서 보면 목사란 자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내 백성을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기독교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까 귀신들 입장에서는 이 보다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구원 받았다고 강조할 때마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죽은 영(귀신)’들은 쾌재를 부르며 좋아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귀신들 입장에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보다 더 좋은 피난처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저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배신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는 말을, 기독교인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말을 자신들에게 적용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았다며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기록한 이 말씀은, 바울처럼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아직 바울처럼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인데, 구원 받았다고 우쭐되고 있으니 주님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여! 이제라도 제발 자신과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말라!
당신의 핏값을 주고 산 하나님 백성들이 귀신에게 속아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고 있으니, 어찌 주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누가 자신을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성경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여러분 안에 평안보다는 세상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면, 여러분 마음속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런 분들은 빨리 자신을 돌이켜서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와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받아들여 한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 영이 없는 자는 버리운 자”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본인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받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에도 갈 수 없다. 유대인들이 이천년 동안 예수의 모형을 붙들고 신앙생활 했지만, 그것으로 천국에 갈 수 없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기독교 신앙생활로는 천국에 갈 수없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기독교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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