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죄에게 종노릇하는 자와 그리스도에게 종노릇하는 자!

거친반석 2022. 8. 28. 12:13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일서3:1-12

제목: 죄에게 종노릇 하는 자와 그리스도에게 종노릇하는 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니라!”(요일3:8-10).

 

본문 말씀 중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하는 말은, 마귀는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위계질서를 어지럽히고 이 세상으로 쫓겨난 범죄자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범죄자(마귀)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예수께서도 자신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세상 임금인 곳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살게 하셨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죄를 범하고 이 세상으로 쫓겨난 마귀의 죄를 더욱더 들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았다는 말은,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영(靈)을 부어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러자 세상 임금인 마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꾀어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는 자기 하수인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곧 마귀가 하늘에서도 범죄자였음을 들어내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즉시 멸하지 아니하시고 4천년을 더 기다렸다. 그 이유는 인간들로 하여금 충분히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마귀의 꾐에 넘어간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은 마귀의 속성을 따라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말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마귀 발아래서 태어나서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죄 없는 인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마귀 발아래서 태어나다보니 죄 아래서 태어나는 인간으로는 마귀를 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준비하신 분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만이 죄가 없기 때문에 마귀를 멸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둘째 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만드신 것은 마귀의 죄를 들추어 내기 위한 것이고, 예수가 태어나신 것은 마귀를 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시기까지 약 4천년이 걸렸다. 하나님은 당장에 예수를 보내서 마귀를 멸할 일이지 왜 4천년 뒤에 예수를 보내서 마귀를 멸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 가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서 인간하고 맺은 약속이라도 결코 변개하지 않으신다. 이 약속은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들에게도 그 약속이 지켜져서 2천년이 지나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다시 오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을 몰아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2천년이 지난 후에 아들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충분히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와 양을 잡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실체가 아니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유대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예수(실체)가 오셨을 때,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 역시 2천년 동안 성령의 법아래서 살게 하신 것은, 장차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분히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것은 실체가 아니고 장차 다시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위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절대 도말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실체)가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영생이 이르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정작 예수가 오셨을 때, 율법에 열심을 내던 자들일수록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율법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육체가 병 들었던 자들과 로마의 앞잡이로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을 하던 세리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을 팔아야 했던 창기들이 도리어 예수를 찾아와 믿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자들의 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었던 ‘원죄’가 해결 되자, 유대인들에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을뿐만 아니라, 예수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도 받지 못하여, 말만 하나님 백성이지 실상은 마귀의 자녀로 살다가 멸망으로 가고 말게 된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선택 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으면 죄를 해결 받지 못하게 되므로 마귀의 자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 백성이 아니고 마귀의 자식들이다. 그런 마귀의 자식들이 전도를 받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방인들이 어떤 노력도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해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신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사단의 백성에서 이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하나님을 법을 제대로 지킨 자만이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죄아래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기가 만만치 않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법은 다름 아닌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이에 따라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신약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만약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영생은 고사하고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그런데 우려했던 대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경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왜 성령까지 받았는데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귀신)’이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경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영’은 성령을 받아도 절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죽은 영’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쫓아주셔야만 마음속에서 떠나게 되어 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으면 구원 받았다며, 그때부터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사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성령을 받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데,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죽은 영'들은 기독교인들을 더욱더 철저하게 자기 하수인 삼아서 나중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 대적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도 그런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바리새인들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했던 것은, 자신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 바리새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죽은 영'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죄아래 태어나게 되었을 때부터 이미 이방인들은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죄악은 누구나 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을 받아도 이런 죄악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가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때문에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과 끝이 다른 것을 두고 이단(異端)이라 부른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분명 처음과 끝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아직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들은 쾌재를 부르며 좋아한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보호해줄 안식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죄악)’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여전히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거리낌 없이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다.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직접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주실 때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가 이끄는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사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결단을 해야 한다. 성령의 법아래서 죄에게 종노릇하며 살다가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에게 종노릇하며 살 것인지 결단을 해야 한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을 받은 하나님 백성이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