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거친반석 2014. 1. 5. 14:02

본문: 요한복음15:1-16

제목: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농부가 늦가을에 가지치기를 할 때,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려고 겨울에 얼어 죽지 않도록 잘 돌보아 주나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양분만 빨아먹고 다른 나무에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잘라버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아들에게 접붙임 당하여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려고 깨끗케 하나,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해 버린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를 농부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안에 거하는 제자들을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 후 열두 제자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아들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세상 만물 가운데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수분섭취를 위해서 여름과일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여름과일은 수분이 많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가을 곡식은 겨울 내내 두고 먹을 양식이기 때문에 속이 덜 찬 쭉정이는 버리고 속이 꽉 찬 알곡들만 골라서 곡간에 넣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4천 년 전에 아브라함 가정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으셨다. 그리고 기한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 여름실과를 얻기 바라셨다. 그러나 여름실과를 수확하러온 아들을, 유대인들의 잘못된 구원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엄청난 형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2천 년 동안 유대인들을 땀흘려 가꾸어 왔지만 그들에게서 거둔 여름실과는 겨우 한광주리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는 것은 만물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도 가을 추수를 끝으로 마감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여름실과 얼마를 거둬들인 하님님께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가을 알곡들을 거둬들이기를 바라고 계신다. 유대인들이 로마군의 손에 팔아 넘게 죽게 한 아들이 삼일 만에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입어, 이제 그리스도의 영이 되어 이방인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영(말씀)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렇게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신실한 알곡이 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현제 자신이 모두 알곡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믿어서는 결코 이방인들은 알곡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자범 죄만 해결해주러 오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지금까지 이런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던 것은,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에 받아,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처음 율법을 받던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는 사실이라 믿어야 한다.

 

영적인 백성들이 범한 자범죄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제대로 따라 살지 못한 마음속의 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결코 해결 받을 수 없다.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들이 범한 자범죄만 해결해주러 오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범한 자범죄는 오직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만 해결 받을 수 있다.

 

현제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모두들 자신을 알곡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아들의 영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라는 사실을 예수께서도 말씀하고 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20)”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믿고 있는 것은 모두가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게 믿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 하나만 제대로 깨닫고 있어도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도 접근하여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과 율법만 지키면 모두가 의인이 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여 성령을 그리스도 영이라고 속여서 모두가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을 속이는 것은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을 못 믿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 백성의 신분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아래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으로 자라온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백성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로 살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백성이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알곡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믿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는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을 지배하는 옛사람(죽은 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옛사람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이는 알곡이 될 수 없다. 만약 기독교인들 말처럼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옛 사람이 떠나고 산영이 계셔야 한다. 헌데 성령을 받았어도 여전히 옛사람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죄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성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 아래 사는 자들이 죄를 짓더라도 그것을 억지로 막지 않으신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세상(타락)으로 가더라도 그것을 억지로 막지 않는다. 하지만 성령은 법을 어긴 인간들을 마지막날에 모두 하나님 심판대 위에 세우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 그리스도 영의 다른점이다. 

 

그리스도 영의 지배를 받는 자는 절대 자신의 뜻대로 살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가 자기 뜻대로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라! 사도바울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입으로는 모두가 예수 이름을 부르지만, 마음은 온통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어떻게든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들이 어떻게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셨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현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지난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알곡이 되어 하나님 나라 곡간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끝까지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 또한 멸망으로 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수님 당시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아 모두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일련의 서건들이 이방인들에게는 거울이 되어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길을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