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그리스도가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하리라!

거친반석 2014. 1. 5. 14:06

본문: 요한복음8:31-59

제목: 그리스도가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을 가장 큰 자긍심으로 여겼다. 따라서 자신들은 누가 뭐라 해도 믿음의 혈통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 의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창세기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보고서다. 거기 보면 가인과 아벨이 혈통에 따라 죄인과 의인으로 갈리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야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들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서 제사만 드리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으로 믿었다.

 

소와 양이 자신들의 죄를 없이 하는 것으로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교만과 의로움은 가히 하늘 찌르고도 남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 앞에 난데없이 나사렛 촌놈이 나타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은 듣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예수가 하는 말에 대하여 “웬 미친놈이 나타나서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이천년 동안 어떤 다른 누구의 지배를 받아 본적이 없이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나서 그의 자손으로 살아왔는데, 전혀 이름도 알 수없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했던 내용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모두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성전에 나가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해도, 그런 행위로는 결코 너희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너희가 드렸던 모든 제사는 나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 실체로 왔으니까 지금까지 성전에 나가 제사 드리던 행위를 그치고, 이제부터는 나를 믿어야 너희가 비로소 죄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어느 누구도 예수가 하는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던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 앞에 달려 나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은 예수가 하는 말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아서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잘못 사용하게 될 때 어떤 결가를 맞이하게 되는 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백성으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아마도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으니까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과연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인의 삶을 살펴볼 때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정적 이유는,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들처럼 아직도 성령의 법에 얽매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법에 얽매여 살고 있다는 말은 아직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는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은 바로 소와 양을 대신할 메시아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소와 양이 예수를 대신할 모형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런 예배로는 결코 부패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현재 예배당에서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 또한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영적인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자들은 결코 이런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과 오늘날 영적인 율법(성령)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똑같은 싸이클로 반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신약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기독교인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당시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던 자들일수록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을 오히려 더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지 않고, 자꾸만 자신을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이 높아져서 사단이 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신앙생활과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닮았는지 다음 내용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과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는 것을 구원의 척도(尺度)로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과 성령의 법에 따라 예배당에 나가서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것으로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 유대인의 그것과 꼭 닮은 것이다.

 

위 말씀대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과 율법 아래서 구원이라고 생각하던 것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 받은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전혀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이 똑같다는 말에 기독교인들로서는 반박을 할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던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것은 이제 겨우 영적인 율법을 받고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듯이, 영적인 백성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신 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영적인 율법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주신 법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이 모두 부패하여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이대로 생을 마감하게 되면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실을 아시고,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기독교인들 앞에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시게 된 것이다. 영적인 백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을 믿고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하나님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신 적이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서 벌써 구원 받은 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가 오시기도 전에 벌써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했던 말씀을,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맞은 말로 적용시키면 “그리스도가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 모두가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기독교인들이 받을 구원이다. 이방인들이 받을 구원을 알곡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재까지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성령의 은사로 사역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는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 중에서 그리스도 영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로서는 아직까지는 성령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 아직 그리스도 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령과 그리스도 영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다보니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왜 우리가 성령과 그리스도 영에 대해서 모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들이 모르기 때문에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똑같은 한분으로 보는 것이지, 만약 알고 있다면 절대 그렇게 함부로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것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변하게 된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처음 시작과 다르게 끝에 가서 모두 타락으로 가고 말았다. 이것을 보면 율법으로는 인간이 온전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율법(성령)아래 사는 기독교인들도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불같이 뜨겁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냉랭하게 식어버리고 만다. 이는 곧 성령을 받은 사람도 시작과 다르게 끝에 가서는 모두 타락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성령의 법 또한 율법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 하나님이 진리가 아니라, 성령의 법을 받은 인간이 시작과 끝이 변하기 때문에, 성령의 법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법은 이렇게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항상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진리(예수)는 처음과 끝이 항상 똑같다. 따라서 진리의 영(그리스도)이 우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절대 타락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왜 영적으로 오실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