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3:1-15
제목: 성령과 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각각 다른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갖는 분들을 위해서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 드립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거하는 땅에 기근이 들자 그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430년을 눌러 살게 됩니다. 430년 동안 이스라엘 숫자가 모래알처럼 불어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시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습니다.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뒤로하고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뒤로하고 여호수아를 따라 나서게 했던 것은 장차 예수가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짓도록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들은 각기 자신들이 나누어 받은 땅에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따로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 백성으로써 꼭 지켜야할 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몸에 병이 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독 병든 자가 많았던 것은 바로 율법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사, 몸에 병이 들지 않았다 해도 인간은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법은 백번 잘하다가 단 한번만 잘못해도 모든 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율법아래 갇힌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이대로 죽게 되면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시게 됩니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자범죄와 모든 인간들의 원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셨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자범죄를 해결해주기 위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것은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인간들(이방인)의 원죄까지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규례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을 만졌거나 더러운 곳을 다녀와서도 반드시 몸을 씻어야 합니다. 그렇지 하지 않으면 법을 어기게 됩니다. 율법에서 이렇게 씻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지은 죄(자범죄)를 육체로 씻어주어야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자범죄도 사함 받지 못할뿐더러 성령도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기독교인들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기독교인의 구원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했던 것처럼,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기 전까지 약 사천년 동안 사단(애굽)의 발아래서 종살이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겨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직접 오실 영적인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실체가 아니고 모형이인 이유는,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자기 백성들의 자범죄를 담당해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영적인 자범죄에서 구원해줄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이를 혼동하면 기독교인들은 구원에서 멀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모세를 따라 나섰던 것처럼, 이방인들도 지금까지 세상에서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다가 예수를 따라 홍해(죽음, 원죄)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자신과의 싸움, 가족들의 핍박)를 지나 시내산(교회)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예수(피)를 통해서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습니다. 이를 두고 기독교인들 또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라 부릅니다.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세(모형)와 여호수아(예수)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갔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지금까지 모형으로 주셨던 예수 이름을 뒤로하고, 이방인들 앞에 직접 오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따라서 요단강(육신의 소욕)을 건너고, 여리고성(옛사람)을 지나, 가나안 땅(마음속)에 들어가서 마지막 아모리 칠 족속(악한 영, 죽은 영)들을 물리쳐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을 뒤따라가지 않고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절대 요단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난공불락인 여리고성 또한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나운 아모리 칠 족속들을 물리쳐야 하는데, 기독교인 어느 누가 사나운 원주민(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고, 영적인 백성들은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을 의지해야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냥 막연하게 예배당에 나가서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을 믿고 그를 따라 나서야만 가능 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만 위해서 그 엄청난 애굽 탈출 사건을 감행한 후 성경에 기록해 놓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 사건은 바로 영적인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단,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사건이 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마음속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도 마음속에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 영 또한 마음속에 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방인들은 “물과 성령”이 아닌 “성령과 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은혜로 말미암아 원하나님께서 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하나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합니다. “영적인 율법”이란 “마음속에 주신 법”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육체에 받았다면,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육체에 받았느냐 혹은 마음속에 받았느냐에 따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범죄를 사함 받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율법을 육체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그들이 육체로 지은 죄를 예수 육체(물)로 씻어주면 되지만,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물로 씻어 주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야 해결 됩니다. 이런 뜻에서 영적인 백성들도 “성령과 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는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하여 알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모세를 따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날 때까지는 누구하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법을 거역하다가 저주를, 받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광야에서 죽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별문제가 없다가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가족으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하고, 가정에 분란이 생기기도하고 또한 성령을 거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자신들을 잘 인도해 주었던 모세를 멀리하고, 한번도 자신들을 이끌어 주지 않던 여호수아를 따라 나서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라고 하는 크나큰 지도자에 대한 향수를 빨리 떨쳐버리고, 하나님이 보내준 아들을 따라 나서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 깊이 뿌린 내린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만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묵은 것을 먹고 새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는 말로 인간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책망하십니다.
같은 맥락에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해서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않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될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보내 주실 영적인 아들(예수)또한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세(모형)이름만 부르고 있다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여호수아(아들)를 따라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아래 사는 것을 믿음의 전부(구원)로 여긴 나머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못해서 그들 대부분이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영적인 백성들 또한 성령의 법아래 사는 것을 믿음의 전부(구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음이 분명한데도 자신을 알곡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이방인들 앞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신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느 누구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거듭났을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적인 백성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결코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백성은 반드시 영적으로 오시는 아들을 믿어야만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법칙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를 변개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오늘날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사들이 모세 같은 역할을 했다할지라도 그들은 홍해바다(세상)와 바란광야(고생)를 지나서 시내산(교회)에 이르러 겨우 성령(율법)까지만 받게 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여호수아를 뒤따라 가야하듯이, 영적인 백성들 또한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따라 나서야 무사히 가나안 땅(구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모세를 뒤로하고 여호수아를 내세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였겠습니까?
이런 내용은 오늘날 육신의 생각으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울처럼 죄인으로 낮추고 들으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義로 사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고, 그 아래서 아들의 은혜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하나님 앞에 열심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의(義)로 사는것이 무엇인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열심을 내던 모든것이 결국은 자기 義를 세우기 위해서 열심을 낸것이라고 바울은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삶도 그들과 비교해볼 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을 진저...-
'구원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생하려거든 먼저 죄인이 되어라! (0) | 2014.01.05 |
---|---|
그리스도가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하리라! (1) | 2014.01.05 |
인간의 의(義)와 하나님의 의(義) (0) | 2014.01.05 |
토기장이의 권한! (0) | 2014.01.05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