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15:1-20
제목: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며, 예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은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라며, 도리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의 제자들이 하고 다니는 짓이 율법의 규례를 어기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당연히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예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버리고 도리어 장로들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잘못된 삶을 책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아래서 약 2천년 동안이나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못하고 사사건건 예수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한 없이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것과 율법을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백성의 신분으로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그들이 이 말씀을 백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예수를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율법이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예수께서는 이를 두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을 내게서 멀도다(사29:13)”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2천년 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왔는데,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들은 율법으로 온전케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고 입술로만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 싫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직 어느 누구도 성령의 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가 없다. 허나 당시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억지 주장을 부리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은 분명히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억지 주장을 부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성령을 그리스도로 영으로 둔갑시켜서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아래서 약 2천년을 살아온 백성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약 2천년을 살아온 백성들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나 똑같은 죄인들이다. 율법 아래 놓인 죄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온전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가더니,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으로 의롭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시하여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성령과 그리스도 영은 각각 그 위격이 다르고, 그리고 하시는 일 또한 각각 다르시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써 인간들에게 법을 주신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 법을 어겼을 경우 마지막 날에 심판을 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인간들이 죽음으로 가는 것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다. 이를 요약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법을 주시고, 법을 어긴 인간들을 심판 하시는 일을 하신다면, 아들은 하나님 법을 어긴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주셨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의 법을 먼저 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성령이 아버지의 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마10:20) 기독교인들 말대로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은 이미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많은 종파로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여러 종파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집에 사는 가족들 간에도 의견이 맞지 않는다.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라면 인간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도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성령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법을 주러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법을 어기고 얼마든지 타락으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이 타락으로 가도 그것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법을 어긴 자들은 마지막 날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성령과 달리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여 인간들이 타락으로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 각각 하시는 일이 다른 점이다.
성령은 하나님 법이 없이 살던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신다. 영적인 율법이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율법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거듭났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을 거역한 죄는 다 어떻게 할 것인가? 히브리서는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들이 흘려준 피로 말미암아 은혜의 성령을 받고도 그것을 거역한 자들의 죄가 얼마나 더 중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하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아 모두가 구원에 이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구원관이다.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도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예배만 드리면 자신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어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은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도 잘못 알고 있는 구원관으로 인하여 아들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부패한 상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법을 따라 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죄가 죄로 더욱 들어나기 위해서 법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죄를 더욱더 들어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시하여, 성령만 받으면 모두가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방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죄악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야 장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셨을 때,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들고 아들 앞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이방인들 앞에 오시기도 전에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아들이 오시기도 전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예수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예수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게 된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죽은 자이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마치 남의 아버지를 부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을 내게서 멀도다”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씀이 처음 듣는 소리라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하시던 말씀도,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사실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하시는 말씀도, 그리스께서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라면 반드시 모두 사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이곳에 기록한 글들이 사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글을 기록한 자는 그리스도를 빙자한 거짓 영이요 하나님 이름을 모독한 자이기에 능지처참을 당해서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이다. 본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 분들은 이곳에 기록한 말씀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직접 확인하시고 그때라도 믿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인들이 맞이해야 할 부활은? (0) | 2014.01.05 |
---|---|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0) | 2014.01.05 |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도다. (0) | 2014.01.05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0) | 2014.01.05 |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0) | 2014.01.05 |